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
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 Stone Statues of Simjeokjeongsa Temple, Sancheong |
|
대표명칭 | 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 |
---|---|
영문명칭 | Stone Statues of Simjeokjeongsa Temple, Sancheong |
한자 | 山淸 深寂精寺 石造佛像群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꽃봉산로133번길 15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1996년 3월 11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소유자 | 심적정사 |
관리자 | 심적정사 |
수량/면적 | 21구 |
웹사이트 | 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은 조선 초에 만들어진 21구의 불상이다. 원래는 신라 경순왕 3년(929) 산청읍 내리에 세운 심적사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 때 절이 불타면서 삼봉산의 동룡굴에 잠시 모셔두었다. 이후 지금의 자리에 심적정사를 다시 짓고 나한전을 세우면서 불상군을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나한상* 15구, 보살상 1구, 신장** 2구, 문인석*** 2구 등이 있다. 이 중 나한상은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생동감 있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움츠린 어깨와 두터운 옷에서는 조선시대에 변화한 불상의 모습이 확인된다. 원래는 22기의 불상이 있었는데, 1기는 한국 전쟁 때 분실되었다고 한다.
심적정사 석조불상군은 순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고려시대 나한상의 계보를 잇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한 스님이 22구의 나한상을 가지고 잦은 난리를 피해 가던 중 지금의 내리에서 잠깐 쉬어가게 되었다. 스님은 불상을 잠시 두고 마을에 갔다 돌아왔는데 불상이 모두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주위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니 심적사 뒤편 절벽에 모여있는 불상을 보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그곳에 나한암을 지어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한 해 겨울 폭설로 교통이 끊기고 음식과 불씨마저 떨어진 채 암자를 지키던 한 스님이 동짓날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들어갔더니 팥죽 한 그릇이 놓여있고 불씨도 피어 있었다. 놀란 스님이 불당에 들어가 주위를 살펴보니 한 불상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겨울을 보내고 봄에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때 한 신도에게서 지난 동지에 나한암에서 온 한 스님에게 팥죽과 불씨를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지난 동짓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고 입가에 팥죽이 묻은 나한부처가 한 일임을 깨닫고 암자로 돌아와 더욱 부처님을 알뜰히 모시며 불심을 굳혔다고 한다.
- 나한(羅漢):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
- 신장(神將): 불법을 지키는 장수신
- 문인석(文人石): 문관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영문
Stone Statues of Simjeokjeongsa Temple, Sancheong
These 21 stone statues enshrined in Nahanjeon Hall of Simjeokjeongsa Temple are presumed to date to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set includes one Sakyamuni Buddha, 15 arhats, one bodhisattva, two attendant deities, and two civil officials. The statues were originally enshrined at Simjeoksa Temple, which was established in 929 about 3.5 km to the southwest in Nae-ri Village.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temple burnt down, resulting in the loss of one of the statues in the set. The rest of the statues were then temporarily placed in Dongnyonggul Cave on Sanbongsan Mountain before being moved to their current location.
The statues hold great value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t sculpture. Notably, the arhat statues show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s seen in their various poses and lively facial expressions, as well as elements introduced in the Joseon period, such as their shrugging shoulders and thick clothing.
There are also several local legends related to these statues. One story says that long ago, a monk carrying 22 arhat statues was passing through Nae-ri in search of refuge. Deciding to take a rest, he put down the statues and went for a quick walk to the village. But upon his return, the statues were nowhere to be found. Eventually, he found some clues which led him to a cliff behind Simjeoksa Temple where the statues were gathered. The monk took this unusual occurrence as a sign to build a hermitage at that very spot to enshrine the statues, which he did. Another story tells that one day, a monk was caught by a strong snowfall and became trapped at the hermitage without any food or fire. When he awoke the next morning, a bowl of red bean porridge and embers were waiting for him in the kitchen. Astounded, the monk went to the worship hall and saw that one of the arhat statues had traces of porridge on its lips. The monk spent the winter guarding the hermitage. When spring came, we went down to the village where he met a lay believer who told him that during the winter, a monk had come down from the hermitage to obtain red bean porridge and embers. Having realized that the arhat statue with porridge traces on its lips was the monk from the story, the monk returned to the hermitage where he devotedly worshiped the Buddha and strengthened his faith.
영문 해설 내용
심적정사 나한전에 모셔져 있는 21구의 석상들은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모니불상 1구, 나한상 15구, 보살상 1구, 신장 2구, 문인석 2구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929년 남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산청 내리에 창건된 심적사에 모셔져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절이 불타면서 1기가 분실되었다. 불상들은 삼봉산의 동룡굴에 잠시 모셔졌다가 이곳으로 옮겨 모셔졌다.
이 불상들은 한국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나한상은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생동감 있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움츠린 어깨와 두터운 옷에서는 조선시대에 변화한 불상의 모습이 확인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한 스님이 난리를 피해 22구의 나한상을 가지고 가던 중 지금의 내리에서 잠깐 쉬어가게 되었다. 스님은 불상을 잠시 두고 마을에 갔다 돌아왔는데 불상이 모두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주위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니 심적사 뒤편 절벽에 모여있는 불상을 보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그곳에 나한암을 지어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어느해, 한 스님이 겨울 폭설로 교통이 끊기고 음식과 불씨마저 떨어진 채 이 암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들어갔더니 팥죽 한 그릇이 놓여있고 불씨도 피어 있었다. 놀란 스님이 불당에 들어가 주위를 살펴보니 한 불상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스님이 겨울을 보내고 봄에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때 한 신도에게서 어느날 나한암에서 온 한 스님에게 팥죽과 불씨를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지난 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고 입가에 팥죽이 묻은 나한이 한 일임을 깨닫고 암자로 돌아와 더욱 부처님을 알뜰히 모시며 불심을 굳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