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소남리 선사유적
산청 소남리 선사유적 Prehistoric Site in Sonam-ri, Sancheong |
|
대표명칭 | 산청 소남리 선사유적 |
---|---|
영문명칭 | Prehistoric Site in Sonam-ri, Sancheong |
한자 | 山淸 召南里 先史遺蹟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소남리 26-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
지정(등록)일 | 1999년 8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
시대 | 신석기 ~ 가야 |
수량/면적 | 35,342㎡ |
웹사이트 | 산청 소남리 선사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
목차
해설문
국문
2019
산청 소남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에서 가야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발견된 장소로, 주거지와 묘 등 275곳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 전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거지로, 그 중 161기가 고대 국가 형성기에 해당되는 우리나라 최대 삼한시대 마을유적지이다. 청동기시대의 주거 또한 50기나 발견되었는데, 이 시기 주거지로써 한 유적지에서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중 길이 17.1m, 폭 8.3m 규모의 큰 건물지가 확인되면서 이곳에 상당한 권력을 갖춘 정치집단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마을 유적 중 규모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며, 신석기시대에서 가야시대에 이르는 석기를 비롯한 35,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사용하였던 도구의 변천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석기 후기에서부터 가야시대 유적이 서로 겹쳐져 발견되어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2024
산청 소남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큰 규모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집터 2기, 청동기시대의 집터 50여기, 원삼국시대 집터 160여기 등과 시대별 다양한 형식의 묘가 확인되었으며, 선사시대 마을 유적 가운데에도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한 유적에서 청동기유적이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당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살았음을 알 수 있는 큰 규모의 집터도 확인된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소남리 일대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뿐만 아니라 4세기 무렵의 일본식 토기도 함께 출토되었다.
소남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유적이 서로 겹쳐 있어 우리나라 고대 사회와 도구의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본과의 교류 관계를 밝혀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영문
Prehistoric Site in Sonam-ri, Sancheong
2019
This prehistoric site includes a total of 275 remains, including dwelling sites and ancient tombs dating back from the Neolithic period (8000–1500 BCE) to the period of the Gaya confederacy (42-562).
Among the remains, there are 161 dwelling sites from the Gaya confederacy period, making this site the largest of this period found in Korea. In addition, 50 dwelling sites date back to the Bronze Age (1500-300 BCE). It is very rare for a single archaeological site to have so many dwelling sites. One of the Bronze Age dwelling sites measures 17.1 m in length and 8.3 m in width, suggesting that a powerful political group once lived in this area.
About 35,000 artifacts, such as pottery shards and stone tools, were excavated from this site, providing valuable information about the changes in Korean prehistoric periods.
2024
This archaeological site in Sonam-ri was once a considerably large prehistoric village that was occupied from the Neolithic and Bronze Ages to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1st century BCE-4th century CE). Structural remains found at the site include two Neolithic, 50 Bronze, and 160 proto-Three Kingdoms-period dwelling sites, as well as various types of tombs also dating to these periods. Not only it is rare for so many Bronze Age dwellings to be found at a single site, but one of the dwelling sites measured a remarkable 17.1 m in length and 8.3 m in width, suggesting that a powerful political group once lived in this area. Japanese-style pottery from around the 4th century was also discovered at the site, providing valuable historic information on the exchange between the Gaya confederacy (42-562) and Japan. Overall, the remains and artifacts discovered at this site greatly aid in the understanding of the social and technological changes in ancient Korea.
영문 해설 내용
2019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묘 등 총 275곳의 유구가 발견된 곳이다.
그중 161기는 가야시대의 주거지로, 한국에서 발견된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또한 50기나 발견되었으며, 한 유적지에서 주거지가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중 길이 17.1m, 폭 8.3m 규모의 큰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이곳에 상당한 권력을 갖춘 정치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에서는 토기조각과 석기류를 비롯한 35,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문화에서 청동기문화, 철기문화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회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2024
소남리의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친 대규모의 마을이 있던 곳이다. 신석기시대 집터 2기, 청동기시대의 집터 50여기, 원삼국시대 집터 160여기 등과 시대별 다양한 형식의 묘가 확인되었다. 한 유적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중 길이 17.1m, 폭 8.3m 규모의 큰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이곳에 상당한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4세기 무렵의 일본식 토기도 함께 출토되어 가야와 일본과의 교류 관계를 밝혀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한국 고대 사회와 기술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