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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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from Seongnamamsa Temple Site, Sancheong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영문명칭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from Seongnamamsa Temple Site, Sancheong
한자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덕산사 (대포리)
지정(등록) 종목 국보 제233-1호
지정(등록)일 2016년 1월 7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소유자 덕산사
관리자 덕산사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화강암으로 조각한 불상이다.

원래 지리산 중턱 석남암사의 옛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석남리에 거주하던 주민이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1959년 내원사(현 덕산사)가 재건될 때 사찰에 양도하였다고 한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크게 솟아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양쪽 어깨를 덮는 법의(法衣)는 어깨와 소매의 옷주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의 일부 남아 있다. 불상의 신체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이 있고 조각 수준이 높아 조형적으로도 우수하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다. 불상의 대좌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사리단지의 표면에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 766년)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제작시기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며, 신라시대 비로자나불의 조성시기를 9세기에서 8세기로 앞당긴 문화재이다.


  • 지권인(智拳印): 곧게 편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손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는 특징이다.

영문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from Seongnamamsa Temple Site, Sancheong

This granite statue depicts a seated Vairocana (Cosmic Buddha), who is the personification of the absolute universal truth. A reliquary discovered inside the statue bears an inscription stating that the statue was made in the year 766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e statue is depicted clasping his right index finger with his left hand, which is a distinguishing gesture of Vairocana. It is the oldest extant statue of Vairocana with this particular hand gesture in Korea.

It is said that the statue was originally located at a site of an abandoned temple site on Jirisan Mountain. Later, two brothers from Seongnam-ri Village took the statue to their house and eventually gave it to Naewonsa Temple (today’s Deoksansa Temple) when it was built in 1959.

The statue has a large protuberance on the top of the head, which is a symbol of the Buddha’s wisdom. The three creases on the neck and upper chest represent the “three destinies” of afflictions, actions, and suffering. The robes drape over both shoulders, and its folds are carved with great detail around the shoulders and sleeves. Behind the Buddha is the remaining part of a halo which represents the auspicious light radiating from his body. Overall, the statue has well-balanced proportions and shows a high level of craftsmanship.

영문 해설 내용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불상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나타낸 것이다. 불상의 대좌 안에서 발견된 사리단지에 통일신라시대인 766년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곧게 편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러한 손모양은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는 특징이다. 이 불상은 한국에 남아 있는 지권인 비로자나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원래 지리산 중턱 석남암사의 옛터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석남리에 거주하던 한 형제가 자택에 보관하다가, 1959년 내원사(지금의 덕산사)가 지어질 때 사찰에 양도하였다고 한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크게 솟아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새겨져 있다. 양쪽 어깨를 덮는 법의는 어깨와 소매의 옷주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이 있고, 조각 수준이 높다.

참고자료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산청군청, 2017.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승격 및 「고려 십육나한도(제7 가리가존자)」등 6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 보도자료, 2016.01.07.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699617&sectionId=b_sec_1&pageIndex=1&strWhere=&strValue=&mn=NS_01_02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로 승격,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60107083500005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766년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智拳印·가슴 앞에 세운 왼손 검지의 첫 마디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 모양) 비로자나불상이다. 한동안 학계에서는 지권인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 형식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를 9세기 중엽으로 보았지만, 이 불상의 발견으로 8세기 중엽에 이미 전해졌음을 알 수 있게 됐다. 이는 신라가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불교의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신속하게 반영했음을 보여준다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13802330100 →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가진 중요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 最古의 紀年銘의 智拳印 비로자나불상으로서 중요하며, 편년자료가 부족한 고대조각사 연구에도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더불어 지권인을 한 如來形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불교 사상과 새로운 불교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서 주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도상적․양식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하고 획기적인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수 있다.
  • <참고>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12102330000 →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천년고찰 산청 내원사 본래 명칭 ‘덕산사’ 되찾았다, 경남일보, 2021.4.4.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120 → 덕산사의 안내문에 따르면 신라 태종 무열왕 4년(657)년에 원효대사가 처음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동방의 대보살로 불렸던 무염국사(801~888)가 상주하며 수많은 수행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오래된 사찰들이 그러하듯 천여년이 지난 광해군 1년(1609)에 원인모를 화재로 절터만 남기고 전소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고 내원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문헌 상 기록 외에 기존의 내원사가 덕산사의 자리에 세워진 것을 실증하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해 내원사는 본명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대웅전의 위치고증을 위한 시굴조사에서 덕산사의 사찰명이 새겨진 기와가 발굴돼 비로소 내원사가 덕산사의 사지(寺址)에 지어진 것을 확인했다. 산청군과 내원사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칭 되찾기를 진행했으며, 지난 3월 중순 대한불교 조계종은 내원사의 사찰명을 덕산사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후 군은 3월 26일자로 전통사찰 변경등록을 완료했다.
  • 국보 제 233-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113호 내원사 3층석탑, 누리고 가야, 네이버 블로그, 2019.8.25. https://blog.naver.com/richpulse/221627606749 →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