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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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영문명칭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한자 泗川 世宗大王 胎室址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30호
지정(등록)일 1975년 2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9,900㎡
웹사이트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는 세종대왕(1418∼1450 재위)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이 있던 곳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태를 사람 신체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여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묻으려고 태실도감을 설치하여 명당을 찾아 태실을 만들었다.

세종대왕 태실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해인 1418년에 이곳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태실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적 때문에 크게 훼손되었다. 선조 34년(1601)에 대대적으로 이곳을 수리하였고, 영조 10년(1734)에 세종대왕 태실이라는 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일본은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으려고 모든 왕의 태실을 부수고 태실에 봉안된 태 항아리를 경기도 양주로 옮긴 후 태실이 있던 땅을 개인에게 팔았다. 이때 세종대왕의 태 항아리도 양주로 옮겨갔다.

지금은 이곳에 개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영조 때 세운 비석과 주변에 흩어진 석조물로 이곳이 세종대왕의 태실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태(胎):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가리키는 말
  • 태실(胎室): 왕실에서 왕,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옹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모시던 곳

영문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This is the site of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ejong (r. 1418-1450).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This ritual of placenta chamber construction is unique to Korea.

King Sejong’s placenta was originally enshrined in today's Boseong, Jeollanam-do. It was relocated to this site in 1418, the year when he ascended the thron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this site was severely damaged by Japanese pirates and was extensively repaired in 1601 and 1730. A stele, bearing the inscription “Placenta Chamber of King Sejong,” was erected in 173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most of the Joseon royal family's placenta jars and destroyed the chambers. King Sejong’s placenta jar was relocated in 1929 to the West Three Royal Tombs in Goyang, and the land was sold to a private individual.

Currently, only the stele erected in 1734 and some parts of the chamber remain here. There is also a private tomb nearby.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세종(재위 1418-1450)의 태실이 있던 곳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胎)를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신 석실이다. 조선시대에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가려 태를 봉안하였다. 태실을 세우는 이러한 의식은 한국에 유일하다.

세종의 태는 원래 오늘날의 전라남도 보성 지역에 봉안되었다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해인 1418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으며, 1601년과 1730년에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다. 1734년에는 ‘세종대왕 태실’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 왕조의 태실들을 훼손하고 태항아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세종의 태항아리 역시 1929년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태실이 있던 땅은 개인에게 팔렸다.

현재 이곳에는 1734년에 세운 비석과 태실 석재 일부만이 남아 있다. 인근에는 개인의 무덤이 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