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가산리 석장승
사천 가산리 석장승 Stone Guardian Posts in Gasan-ri, Sa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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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천 가산리 석장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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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Guardian Posts in Gasan-ri, Sacheon |
한자 | 泗川 駕山里 石長丞 |
주소 |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626-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민속문화재 제3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12월 24일 |
분류 | 유물/기타종교조각/민간신앙조각/석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8기/51㎡ |
웹사이트 | 사천 가산리 석장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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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사천 가산리 석장승은 뱃길 보호와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며 돌로 만들어 세운 장승이다. 가산에는 가산창(駕山倉)이라는 조선 시대 조창*이 있었는데 이곳과 이웃한 7개 군현에서 세곡**을 모아 바닷길을 이용해 서울로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현감은 세곡을 실은 배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늘 걱정하여 돌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남 장승 두 쌍과 여 장승 두 쌍이 있다. 남 장승과 여 장승은 각 한 쌍씩 짝이 되어 마을 입구와 그곳으로부터 약 650m 정도 떨어진 당산나무 아래에 마주보며 서 있다. 사모***를 쓰고 관복을 입은 문인석**** 모습의 남 장승과 머리에 2개의 상투를 튼 여 장승의 모습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현재의 여 장승은 원래의 것을 잃어버려 1980년 12월 5일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이들 장승은 조창이 없어진 이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장승제를 지내고 제사가 끝나면 ‘가산오광대’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정월 대보름에 장승제를 지낸다.
- 조창(漕倉):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의 명목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저장, 운영하던 국영 창고. 주로 해안이나 하천의 포구에 설치
- 세곡(稅穀): 나라에 조세로 바치는 곡식
- 사모(紗帽):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 문인석(文人石):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영문
Stone Guardian Posts in Gasan-ri, Sacheon
Guardian posts are usually made of wood or stone in human shapes and are erected at the entrance of a village or along the street in a belief that they will spiritually protect the village. Sometimes they mark the boundaries between different areas.
The stone guardian posts in Gasan-ri are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after the 18th century. Originally there were four pairs of stone guardian posts but one pair was stolen. In 1980, the lost ones were remade. Only the other three pairs were designated as folklore cultural heritages.
In 1760, a maritime transport granary was established in this village in order to collect tax grains from the nearby areas and ship them to the capital. The locals established these stone guardian posts wishing their tax grains to safely arrive, and officials from the local government performed a ritual before these guardian posts. After the granary was removed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se posts were worshiped by the locals as guardians protecting the village.
Today the villagers perform a ritual on the first full moon of the lunar year, wishing the well-being of the village.
영문 해설 내용
장승은 나무나 돌로 사람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웠던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거나 지역 사이의 경계 표시 등의 구실을 하였다.
가산리의 석장승은 1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총 네 쌍의 석장승이 있었으나, 한 쌍은 도난당하여 1980년에 새로 만들었고, 나머지 세 쌍만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60년 이 마을에 조창이 설치되어, 주변 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곡이 바닷길을 통해 서울로 보내졌다. 세곡을 실은 배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돌장승이 세워졌으며, 인근 고을의 관원들이 모여 장승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19세기 말 조창이 없어진 이후, 이들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섬겨졌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장승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