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Bomanjeong Pavilion and Stele of Geomd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Bugang-m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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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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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omanjeong Pavilion and Stele of Geomd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Bugang-myeon |
한자 | 芙江 保晩亭 및 黔潭書院 廟庭碑 |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금호리 712-3 |
지정(등록) 종목 |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10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정자 1동, 비 1기/2,746.5㎡ |
웹사이트 | 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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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보만정은 조선 현종 10년(1669)에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학문을 연구하며 여생을 마치려고 했던 검담에 세운 정자이다. 후학들은 송준길을 기리기 위해 숙종 20년(1694)에 검담서원을 세우고 보만정을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함께 없어졌다가 1920년대 초 다시 세웠다.
보만정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대청마루·툇마루·방·서고가 있다. 이 서고에 동춘당 문집 판각(板刻)을 보관했었다. 보만정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건축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보만정 앞뜰에 있는 검담서원 묘정비는 영조 42년(1766)에 세운 것이다. 이는 받침 부분과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검담서원의 건립 내력과 송준길의 일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영문
Bomanjeong Pavilion and Stele of Geomd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Bugang-myeon
Bomanjeong Pavilion was built in 1669 by Song Jun-gil (1606-1672, pen name: Dongchundang),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As one of the renowned scholars representing the intellectual and political circles of late Joseon, Song was particularly knowledgeable in the study of rites and skilled in writing and calligraphy. After resigning from his official posts, he committed himself in studying and teaching his students for the rest of his life.
In 1694, Song Jun-gil's disciples built Geomdanseowon Confucian Academy to honor him, and Bomanjeong Pavilion was used as a lecture hall. However, the Confucian academy was demolished in 1871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The current building was rebuilt in the 1920s.
The stele standing in front of the pavilion was erected in 1766 and records the life of Song Jun-gil and the history of Geomdanseowon Confucian Academy.
영문 해설 내용
보만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준길이 1669년에 지은 것이다. 송준길은 조선 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으로,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 능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1694년 후학들이 송준길을 기리기 위해 검단서원을 세우고, 보만정을 강학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20년대에 다시 세운 것이다.
보만정 앞에 서 있는 묘정비는 1766년에 세운 것으로, 송준길의 일생과 검단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