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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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각
Bonghwanggak Hall
봉황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봉황각
영문명칭 Bonghwanggak Hall
한자 鳳凰閣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호
지정일 1969년 9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대한제국시대
수량/면적 건물 1棟, 토지 169.8㎡
웹사이트 봉황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912년 의암 손병희가 세운 건물이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키워 낸 곳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부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일제 강점기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오세창이 썼다. 손병희는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 신앙을 퍼뜨리는 한편,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삼기 위해 이 집을 지었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 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당시의 유물이 남아 있고 이곳 앞쪽 약 50m 지점에 손병희의 묘소가 있다.

  • 옛 천도교 중앙총부 건물 舊 天道敎 中央 總部 建物

봉황각 앞에 오래된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원래 1921년 종로구 경운동에 지었던 천도교 대교당의 중앙총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종로구에 있을 때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1899~1931)이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역사적인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인 《개벽》이 발행된 곳이기도 하다.

영문

Bonghwanggak Hall

Bonghwanggak Hall was built in 1912 by Son Byeong-hui (1861-1922) as a training center of Cheondogyo (“Religion of the Heavenly Way”), an indigenous religion of Korea.

Son was the third leader of Cheondogyo and one of the prominent leaders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t Bonghwanggak Hall, he tried to instill historical awareness into the leaders of Cheondogyo and helped plan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of 1919. His disciples who were trained at Bonghwanggak Hall went on to play a pivotal role during the nationwide movement.

The building’s name plaque was calligraphed by O Se-chang (1864-1953), a renowned calligrapher, journalist, and independence activist. On the hill about 500 m from this hall is Son Byeong-hui’s tomb.

  • Former Headquarters of Cheondogyo

The red brick building standing in front of Bonghwanggak Hall was built in 1921 as the headquarters of Cheondogyo. It was originally located in Gyeongun-dong and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69.

Bang Jeong-hwan (1899-1931), a son-in-law of Son Byeong-hui and pioneer of Korean youth literature, initiated diverse activities to improve children’s rights at this headquarters. Korea’s first monthly magazine Gaebyeok (“The Beginning”) was also published here beginning in 1920.

영문 해설 내용

봉황각은 1912년 손병희(1861~1922)가 천도교 수도원으로 건립하였다.

손병희는 천도교 제3세 교조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수장 중 한 사람이었다. 봉황각은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사용되었고, 1919년 3·1운동에 대한 구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이곳을 거쳐 간 지도자들이 전국적인 만세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현판의 글씨는 저명한 서화가, 언론인, 독립운동가였던 오세창(1864~1953)이 썼다. 봉황각 맞은편 약 50m 떨어진 언덕에는 손병희의 묘소가 있다.

  • 옛 천도교 중앙총부 건물

봉황각 앞에 붉은 벽돌 건물은 1921년에 지어진 천도교 중앙총부 건물이다. 원래 경운동에 있던 것을 196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손병희의 사위이자 아동문학가인 방정환(1899-1931)이 어린이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시작한 곳이고, 1920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 월간 잡지인 《개벽》이 발행된 곳이기도 하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