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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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
Stele of Hong Ik-han, Bonghwa
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
영문명칭 Stele of Hong Ik-han, Bonghwa
한자 奉化 花浦 洪翼漢 忠烈碑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93-2 외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25년 7월 28일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화포 홍익한(1586~1637)은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서 태어났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순절*한 삼학사** 중 한 명이다. 호는 화포(花浦)이고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봉화 화포 홍익한 충렬비는 조선 숙종 때인 1683년에 지역의 유림***들이 홍익한의 충성과 절의를 기리기 위해 생가지 근처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비석 덮개(비두(碑頭)), 비석 몸체(비신(碑身)), 비석 받침(비대(碑臺))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석 덮개와 비석 몸체가 한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비석 받침은 무늬 없이 높지 않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비석 덮개의 앞면과 양 옆면에는 단순한 소용돌이 형태의 구름 무늬를 반복하여 새겼는데,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된 모습이다.

이 비석은 세운 연도가 확실하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으며, 당시의 비석 제작 기법이 잘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홍익한의 충성과 절의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순절(殉節): 충성스러운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죽음.
  • 삼학사(三學士): 병자호란 때 중국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한 세 명의 학사. 홍익한·윤집·오달제를 이르는데, 모두 청나라에 붙잡혀 갔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저항하였다.
  • 유림(儒林):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

영문

Stele of Hong Ik-han, Bonghwa

This stele was erected in 1683 by local Confucian scholars to honor the patriotic devotion of Hong Ik-han (1586-163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Hong fervently opposed surrender to Qing China and insisted on continued resistance, but after King Injo (r. 1623-1649) surrendered, Hong was taken to Qing China and executed.

Located in Hong’s hometown of Mundan-ri Village, th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base, a body stone, and a capstone, with the body and capstone carved from a single piece of stone. The base is neatly cut with no decoration, while the capstone features swirling cloud designs. Overall, the stele exhibits a restrained beauty without excessive ornamentation.

With its known creation date and excellent state of preservation, this stele clearly demonstrates the characteristics of late 17th-century stele production techniques, making it of both historical and artistic value.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 문신 홍익한(1586-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83년 봉화 지역의 유림들이 세운 것이다. 홍익한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였으며, 인조(재위 1623-1649)가 항복한 뒤 청나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이 비석은 홍익한의 고향인 문단리에 있으며,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몸돌과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은 장식 없이 단정하게 다듬었으며, 머릿돌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조형미를 보여 준다.

이 비석은 건립 연대가 분명하고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7세기 후반 비석 제작 기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