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원실(원불교 익산성지)
본원실 本源室 Bonwonsil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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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원불교 익산성지 |
해설문
국문
본원실은 1924년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다.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의 첫 사무실로 사용된 곳이며,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少太山 大宗師 朴重彬, 1891~1943)과 초기 제자들의 주요 거처였다. 처음에는 원래 이곳의 지명인 도치고개의 도치(盜治)를 도치(道治)로 고쳐 도치원(道治院)이라 불렀다. 이것은 소태산이 도둑고개로 불리던 땅을 도(道)로써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지금은 익산성지에서 최초로 지어진 집이란 뜻에서 본원실이라 부른다. 본원실은 일본식 주택의 영향을 받은 개량 한옥으로 일본식 목조 구조가 주를 이루고, 부분적으로는 전통적 기법을 수용한 근대 주택이다.
영문
Bonwonsil Hall
Bonwonsil Hall was built in 1924. It is the oldest building in the Iksan Sanctuary of Won-Buddhism.
This building was the first office of the Society for the Study of the Buddhadharma (today’s Won-Buddhism). It was the main residence of Bak Jung-bin (1891-1943), the founder of Won-Buddhism, and his early followers. The building was dismantled and renovated in 1987.
This building was originally named Dochiwon, meaning “Hall Ruled by the Way.” The area where the Iksan Sanctuary is located is known as Dochigogae Pass, meaning “Pass Ruled by Thieves.” The characters for “thief” (盜, do) and “the Way” (道, do) are homophones. Thus, the name of the building was a reinterpretation of the local name that conveyed Bak Jung-bin’s resolve to rule this place through the Way.
영문 해설 내용
본원실은 1924년에 건립되었으며, 원불교 익산성지 내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건물이다.
이곳은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의 첫 사무실로 쓰였고,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1891-1943)과 초기 제자들의 주요 거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87년에 해체 후 복원한 것이다.
본원실의 원래 이름은 ‘도치원’으로, ‘도(道)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익산성지가 위치한 곳은 원래 ‘도둑고개’라는 뜻의 도치고개라고 불렸으며, 박중빈이 이 땅을 도(道)로써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참고자료
- 원불교 익산성지,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482 -> 본원실은 익산성지 내에서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다. ‘불법연구회’의 간판이 처음 걸렸던 곳이며, 대종사의 거처였다. 이후 함석지붕과 유리창이 생겼으나, 1985년에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보수하였다.
- 성보 제06호 익산성지 도치원, 원불교 소개 https://guide.won.or.kr/pages/sungji/iksan/5 -> 원불교 익산성지에 최초로 지어진 건축물이자 불법연구회(원불교 교명 이전의 명칭)의 첫 사무실로 사용한 곳입니다. 원기 9년(1924) 11월 완공되자 서중안 회장의 글씨로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 간판을 기둥에 걸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건물이 완공되자 원래 이곳의 지명인 도치고개의 도치(盜治)를 도치(道治)로 고쳐 도치원이라 이름했습니다. 본래는 방이 셋 있었는데 서아실은 소태산 대종사가 거처하는 조실로 사용되었으며, 동아실은 제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방은 교무실을 겸하여 정산종사가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원기 13년(1928) 금강원이 완공되면서 소태산 대종사가 거처를 옮기자, 부인 선객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부인선원’으로 통칭하였다. 원기 56년(1971)부터 원기 62년(1977)까지는 중앙훈련원으로 사용해 오다가 원기 72년 건물의 노후화 되어 퇴락함에 따라 부득이 해체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깆추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익산성지에서 최초로 지어진 집이란 뜻에서 그 이름을 본원실(本源室)로 병용해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