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석계재
| 보성 석계재 Seokgyejae Village Study Hall, Bo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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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석계재·죽곡정사 연평답문보록' 전남도 문화재 지정, 남도방송, 2023.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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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보성 석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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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eokgyejae Village Study Hall, Boseong |
| 한자 | 寶城 石溪齋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민속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2023년 7월 27일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면적 | 661㎡ |
| 웹사이트 | 보성 석계재,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보성군 조성면 덕산리, 김해김씨 모헌공파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에는 조선 후기의 서재 건축물인 석계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의 목조건물로, 처음에는 1840년대 초가로 지어졌다고 전하며, 현재 모습은 1871년 진사 김관식과 김낙현이 세운 것입니다.
석계재에는 건립 당시 작성된 1871년 상량문과, 1898년·1919년의 석계재 기문이 남아 있어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또 매천 황현, 송운회, 송명회, 안규용 등 당대 명사들의 시문과 운영 기록도 전해져, 당시 지역 서재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현재 석계재에는 운영 문서 29종과 명인들의 시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석계재가 근대 보성에서 학문 교류와 문화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0년이 넘은 지금도 건축 구조와 목재 결구 기법이 잘 남아 있어, 석계재는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교육과 학문을 이어온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됩니다.
영문
Seokgyejae Village Study Hall, Boseong
Seokgyejae Village Study Hall is located in Deoksan-ri, a clan village of the Moheongong Branch of the Gimhae Kim clan. It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in the 1840s as a thatched-roof building and reconstructed in its current form in 1871, as attested to by the inscription on its ridge purlin. The building measures six bays in width by three bays in depth and features a well-preserved original structure and wood joinery.
The study hall also houses records from 1898 and 1919, 29 documents related to its operation, and various written works composed by scholars such as Hwang Hyeon (1855-1910), Song Un-hoe (1874-1965), Song Myeong-hoe (1872-1953), and An Gyu-yong (1873-1959), which together demonstrate the pivotal role Seokgyejae Village Study Hall played in local academic exchange and cultural activities from the late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석계재는 김해김씨 모헌공파가 대대로 살아온 덕산리 마을에 세워진 서당이다. 처음에는 1840년대에 초가로 지어진 것으로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1871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로, 당시의 건축 구조와 목재 결구 기법이 잘 남아 있다.
석계재에는 1871년 건립 당시의 상량문과 1898년·1919년에 작성된 기문이 전해진다. 또한 서당 운영과 관련된 문서 29종을 비롯해 황현(1855-1910), 송운회(1874-1965), 송명회(1872-1953), 안규용(1873-1959) 등 당대 학자들의 시문이 남아 있어, 당시 지역 서당의 운영과 학문 활동을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석계재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보성 지역 학문 교류와 문화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