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이상 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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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이상영당
Shrine of Yi Sang
백파 이상 영당, 디지털논산문화대전.
대표명칭 백파이상영당
영문명칭 Shrine of Yi Sang
한자 백파이상영당
주소 논산시 벌곡면 대둔로 1189번길 54-20 (조령리)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6호
지정(등록)일 2005년 10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2곽 6동/502㎡
웹사이트 백파 이상 영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태조의 셋째아들 이방의(李芳毅)의 손자 이상(李常)의 영정(影幀)을 모셔 제향하는 곳이고, 승무재는 그의 아들 이현동(李賢童)의 재실이다. 이상은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역모로 몰려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2백여 년 후 능골이란 지명이 있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에서 후손이 묘소를 찾아냈다. 영당의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3칸‧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정면 퇴칸은 모두 기단을 설치하였고, 어칸(건물의 입면 가운데 칸)에는 네 개의 합각문, 협칸에는 각각 한쪽씩 문을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다.

이상의 아들 이현동은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초상화만 들고 이곳 벌곡면 조령리에 정착하였다. 세조가 그를 등용하려고 하였으나 농맹아(聾盲啞) 행세를 하며 끝까지 거절하였다. 율곡선생은 이는 생육신과 같은 절의가 있다고 높이 평가하였고, 그 후 논산 충곡서원과 조정서원에 배향되어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승무재 상량문에 쓰인 ‘숭정기원후임자사월이십오일(崇禎紀元後壬子四月二十五日)’에 의하면 현종 13년(1672)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면 4칸‧측면 3칸으로 된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다.

영문

Shrine of Yi Sang

  • Shrine of Yi Sang and Seungmujae Ritual House

This shrine holds a portrait of Yi Sang, a grandson of Yi Bang-ui (?-1404), also known as Prince Igan, who was the third son of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Seong-gye (King Taejo, r. 1392-1398).

It is unknown when the shrine was established. The current building is presumed to date to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has since undergone several renovations. Located to the left of the shrine is Seungmujae Ritual House which was built in 1672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Yi Hyeon-dong, a son of Yi Sang. Both buildings are preserved in a relatively unaltered state and reflect the architectural traits of the Joseon period.

When King Sejo (r. 1455-1468) usurped the throne of his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Yi Sang had to seek refuge and lived the rest of his life in seclusion. Not knowing about his father’s whereabouts, Yi Hyeon-dong moved to his wife’s hometown Nonsan and eventually settled in Joryeong-ri Village. He took on the pen name Nongmaenga, meaning “deaf, blind, and mute,” which reflected his distress and unwillingness to accept the usurpation of King Danjong’s throne. Yi Hyeon-dong never served any official posts and advised his sons not to seek the career of a civil official. In recognition of his loyalty, Yi Hyeon-dong was honored at the Chunggokseowon and Jojeongseowon Confucian Academies, both located in the Nonsan area.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태조(재위 1392-1398)의 셋째 아들 익안대군 이방의(益安大君 李芳毅, ?-1404)의 손자 이상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처음 건립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말에 세워진 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당 왼쪽의 승무재는 이상의 아들인 이현동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1672년에 건립되었다. 두 건물 모두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상은 피신하여 평생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현동은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부인의 고향인 논산으로 이주하였으며 조령리에 정착하였다. 이현동은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입으로 차마 간할 수 없고,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다.”라고 하며 스스로 농맹아(聾盲啞)라는 호를 짓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자식들에게도 벼슬하지 말도록 경계하였다. 충절로 이름이 높았고, 논산 충곡서원과 조정서원에 모셔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