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풍 석정려
박리풍 석정려 Steles of Bak Ri-pung and Bak Sang-h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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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박리풍 석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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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s of Bak Ri-pung and Bak Sang-hyu |
한자 | 朴履豊 石旌閭 |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장로 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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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한다.
박리풍 석정녀는 백운면 반송리 대광수련원 정문 옆에 있는 2기의 석조 정려비인데, 왼쪽은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박리풍(朴履豊), 오른쪽은 그의 아들 박상휴(朴尙休)의 정려이다. 이들 부자가 효성이 지극하고 제사를 정성스럽게 받들었기에 이를 기려서 세웠다.
정려비는 기둥의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는 배흘림 형태를 하고 있다. 기둥 아래에는 원형과 방형의 주춧돌을 놓아 마치 목조건축과 같은 득특한 양식적 특징을 띈다. 왼쪽 박리풍의 정려비는 높이 87cm, 너비 32cm, 두께 12cm이고, 오른쪽 박상휴의 정려비는 높이 88cm, 너비 30cm, 두께 12cm이다.
영문
Steles of Bak Ri-pung and Bak Sang-hyu
These two steles are for the filial piety of Bak Ri-pung and his son Bak Sang-hyu who lived in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ccording to local records, when Bak Ri-pung’s father fell ill, he caught fish from the frozen river to serve to his father. After his father died, he was devoted in completing the required funerary and mourning practices and conducted rituals in memory of his late father with utmost care. After Bak Ri-pung died, his son Bak Sang-hyu lived in a hut right next to his tomb during the mourning period.
In recognition of their filial devotion, a commemoration was bestowed in 1886, and these steles were erected in the same year. The stele on the left is of Bak Ri-pung, and the stele on the right is of Bak Sang-hyu.
영문 해설 내용
이 두 비석은 조선 후기의 인물인 박리풍과 박상휴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기록에 따르면 박리풍은 아버지가 병이 나자 얼어붙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정성을 다해 상을 치르고 제사를 봉양하였다. 아들 박상휴도 역시 효자였다. 박리풍이 죽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이들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가 1866년에 내려졌으며, 같은 해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왼쪽이 박리풍의 비이고 오른쪽이 박상휴의 비이다.
참고
- “박이풍”,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