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
| 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 Stele of Yi Sin for His Filial Devotion,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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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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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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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tele of Yi Sin for His Filial Devotion, Miryang |
| 한자 | 密陽 孝子 李申 旌閭碑 |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성만남전로 463-5 (남전리) |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1999년 8월 3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 소유자 | 재령이씨대종회 |
| 관리자 | 재령이씨대종회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면적 | 1기 |
| 웹사이트 | 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밀양 효자 이신 정려비*는 계은 이신(溪隱 李申)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신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죽만 먹으면서 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가며 무덤을 보살피는 등 마음을 다해 부모님을 섬겼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이신의 효행이 알려지면서 정려비가 세워졌다. 이 정려비는 효행 사상의 계승과 교육을 위하여 1999년 8월 2일에 경상남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되었다.
세종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이신부토(李申負土)’라고 이름 붙인 시묘*** 상 그림과 더불어 ‘이신은 공양왕조의 충신으로 시묘하는 동안에 상복을 벗지 않고 죽과 채소로 연명하는 등 지극한 효성을 나타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오휴자 안신은 밀주오현(密州五賢)****의 말과 행동을 모아 간략히 서술한 책에서 이신을 학식과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기록하였다.
이신은 고려 공민왕 때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의 벼슬을 지내며 간관 김진양과 함께 끝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 하였다. 이에 고려를 폐하고 조선을 세우려 하는 이들을 탄핵하기도 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매를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으로 인해 운명하였다. 현재 이신의 신주*****는 경기도 파주에 건립된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 충신각(忠臣閣)에 모셔져 있다.
- 정려비(旌閭碑): 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행적을 돌이나 쇠붙이, 나무 따위에 글로 새겨서 세운 것.
- 효행(孝行): 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
- 시묘(侍墓): 부모의 상중에 3년간 그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삶.
- 밀주오현(密州五賢): 경상남도 밀양 출신인 다섯 명의 어질고 총명한 사람. 이신, 변계량, 김종직, 박한주, 신계성을 일컫는다.
-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 대개 밤나무로 만드는데, 길이는 여덟 치, 폭은 두 치가량이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지게 생겼다.
영문
Stele of Yi Sin for His Filial Devotion, Miryang
This stele commemorates the filial devotion of Yi Sin,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stele was erected in 1405 and underwent a renovation in 1974. It consists of a brick pedestal, two stone pillars, and a capstone. The stele on the right records the details of the main stele’s renovation.
It is said that after his parents passed away, Yi Sin mourned them while living in a hut next to their tomb and surviving only on rice porridge and vegetables. Yi Sin’s filial deeds are described in the Illustrated Conduct of the Three Bonds (Samgang haengsildo) published in 1434. He is also mentioned as a person of high scholarship and moral virtues worth looking up to in a book about the five Confucian sages of Miryang written by the Miryang-born scholar An Sin (1569-1648).
During his lifetime, Yi Sin saw the fall of the Goryeo dynasty to which he remained loyal, having denounced those planning to establish a new dynasty. In 1392, when the Joseon dynasty (1392-1910) finally came to power, Yi was sent into exile, where he died from being severely beaten. Yi Sin’s spirit tablet is currently enshrined in Chungsingak Hall of the Goryeo Unification Palace complex in Paju, Gyeonggi-do.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고려시대의 문신 이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원래의 비석은 1405년에 처음 세워졌고, 지금의 비석은 1974년에 보수한 것이다. 벽돌조 기단 위에 2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형태이다. 오른쪽에는 보수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신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죽과 채소로만 연명하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섬겼다. 1434년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에도 이신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밀양 출신의 학자 안신(1569-1648)은 밀양 출신의 다섯 현인의 말과 행적을 모은 책을 지었는데, 이 책에서 이신을 학식과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기록하였다.
이신은 고려 왕조가 멸망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무리들을 탄핵하기도 하며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이신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매를 심하게 맞아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신의 위패는 경기도 파주에 건립된 고려통일대전 충신각에 모셔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