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자암서당
밀양 자암서당 Jaamseodang Village Study Hall,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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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자암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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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aamseodang Village Study Hall, Miryang |
한자 | 密陽 紫岩書堂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무릉2길 28(무릉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4호 |
지정(등록)일 | 1993년 1월 8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3동 |
웹사이트 | 밀양 자암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구한 말 유학자 노상직(盧相稷ㆍ1855~1931)이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1913년 돌아와 저술과 후진 양성을 위해 세웠다. 근대식 학교 운영 방식을 채택한 학교식 서당이었다.
‘자암’이라는 이름은 서당 주변의 자줏빛 암석이 마멸되지 않고 본디 색을 이어가는 기상을 학생들이 본받으라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저술 활동을 하면서 1000여 명에 달하는 후진을 키워냈다.
3ㆍ1운동 직후 유림에서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성리절요(性理節要)》 《동국씨족고(東國氏族攷)》 《가락국사실고(駕洛國事實攷)》등의 글을 지었고, 《성호집(星湖集)》간행에도 관여했다.
《이자수어(李子粹語)》등 수십 권 의 문헌을 교정해 근세 출판문화 발달에 기여했다. 그의 목판(木板) 문집 가운데 2113장(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은 밀양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영문
Jaamseodang Village Study Hall, Miryang
Jaamseodang Village Study Hall was established in 1913 by the Confucian scholar No Sang-jik (1855-1931). The name Jaamseodang means “Study Hall of the Red-Violet Stone,” in reference to the plum-colored bedrock in the vicinity that demonstrates virtues to be emulated by the students, namely to not erode and to have a lasting natural color.
Following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in 1910, No Sang-jik initially fled to Manchuria, but returned to Miryang in 1913 and built this study hall, which operated under a modern school system. He remained here until his final days, actively writing and teaching nearly 1,000 students. He was also among the signers of the petition sent to the 1919 Paris Peace Conference demanding the international acknowledgment of Korea’s independence.
Apart from his own collected works, No Sang-jik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the collected works of Confucian scholars, reviewed and printed several volumes of documents, and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publication culture in the early 20th century. Among the woodblocks made for printing his collected works, 2,113 were designated as a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1979 and are currently kept at Miryang City Museum.
The study hall complex also includes a main quarters, which served as No Sang-jik’s living quarters, a men’s quarters, and a gate quarters.
영문 해설 내용
자암서당은 유학자 노상직(1855-1931)이 1913년에 세웠다. 자암서당이라는 이름은 “자줏빛 암석의 서당”이라는 뜻으로, 서당 주변의 자줏빛 암석이 마멸되지 않고 본디 색을 이어가는 기상을 학생들이 본받으라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노상직은 1910년 일제에 의해 한국이 국권을 상실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1913년 밀양으로 와 근대식 학교 운영 방식을 채택한 자암서당을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저술 활동을 하면서 1,000여 명에 달하는 후진을 키워냈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한국의 독립 청원서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노상직은 자신의 저서 외에도 선현들의 문집을 편찬하였으며, 여러 문헌을 교정, 발간하여 20세기 초 출판문화 발달에 기여하였다. 그의 문집을 발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 중 2,113장이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밀양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서당 경내에는 서당 건물 외에도 노상직이 거처하던 정침과 사랑채, 대문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