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오방리 강동구
밀양 오방리 강동구 Gangdonggu Mounds in Obang-ri,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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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오방리 강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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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angdonggu Mounds in Obang-ri, Miryang |
한자 | 密陽 五方里 江東邱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353-4, 범평리 513-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120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10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수량/면적 | 2기 |
웹사이트 | 밀양 오방리 강동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강동구(江東邱)는 평안도 도사를 지낸 조광익(曺光益ㆍ1537~1578)을 조문하려고 평안도 강동현(江東縣) 사람들이 가지고 온 흙으로 쌓은 작은 둔덕이다. ‘강동의 언덕’이란 뜻으로 오방리와 범평리 사이의 길 양쪽에 마주 보고 있다.
조선 선조 때인 1575년 경상도 도사(都事)*최황이 조광익의 동생 조호익(曺好益)에게 군적(軍籍)에 올랐으면서도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호익은 아버지 상(喪)을 이유로 거부했다가 강동현으로 유배됐다. 형 조광익은 동생을 만나기 위해 1578년 평안도 도사의 직책을 얻어 갔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그를 오방리에 장사할 때 형제의 우의에 감복한 강동의 선비와 백성들이 흙을 걸머지고 조문을 와 묘 위에 뿌리고 남은 흙으로 둔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조 임금도 이들의 우애를 가상히 여겨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싣도록 했다. 1834년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비각이 둔덕 옆에 세워졌다. 조광익을 기리는 정려각(旌閭閣)과 그를 모시는 오봉서원이 근처에 있다.
- 도사: 조선시대에 관찰사를 보좌하던 관원.
영문
Gangdonggu Mounds in Obang-ri, Miryang
These two small mounds, located on either side of the road separating Obang-ri and Beompyeong-ri Villages, are made of soil brought from Gangdong, Pyeongan-do Province (near present-day Pyeongyang, North Korea) by people attending the funeral of Jo Gwang-ik (1537-1578), who had served as assistant governor of Pyeongan-do. The name Gangdonggu means “Mounds from Gangdong.”
Jo Gwang-ik was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o began his official career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564. In 1575, the assistant governor of Gyeongsang-do, Choe Hwang (1529-1603), ordered Jo Gwang-ik’s younger brother, the scholar Jo Ho-ik (1545-1609), to locate men listed on the military service roster who had not fulfilled their military duties. Jo Ho-ik refused the order as he was fulfilling the mourning period for his late father and was exiled to Gangdong as punishment. To meet his younger brother, Jo Gwang-ik obtained the post of assistant governor of Pyeongan-do in 1578 but died of disease while serving there. The people of Gangdong were so moved by the Jo brothers’ love that they traveled all the way to Obang-ri to pay their condolences at Jo Gwang-ik’s funeral. It is said that some of the soil they brought with them was used to make the burial mound for Jo’s tomb, while the rest was used to make these two mounds.
King Seonjo (r. 1567-1608) commended the Jo brother’s love by including their story in the Illustrated Conduct of the Three Bonds. In 1834, a commemorative pavilion honoring their brotherly love was erected next to these mounds. Other sites in Obang-ri Village that honor Jo Gwang-ik include a commemorative pavilion and Obongseowon Confucian Academy.
영문 해설 내용
오방리와 범평리의 경계를 이루는 길 양쪽에 위치한 2개의 작은 둔덕은 평안도 도사를 지낸 조광익(1537-1578)을 조문하러 온 평안도 강동현 사람들이 가지고 온 흙으로 쌓았다. 강동구는 “강동의 작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조광익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로 1564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575년 경상도 도사 최황(1529-1603)이 조광익의 동생인 문신 조호익(1545-1609)에게 군적에 올랐으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호익은 부친상을 이유로 거부했다가 강동현으로 유배되었다. 조광익은 동생을 만나기 위해 1578년 평안도 도사의 직책을 얻어 갔다가 병을 얻어 그곳에서 죽었다. 형제의 우애에 감복한 강동현 사람들은 조광익의 장례에 조문하기 위해 오방리로 왔다. 그들이 가져온 흙의 일부는 묘의 봉분을 만드는 데 쓰고, 나머지로 이 두 개의 둔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조(재위 1567-1608)도 이들의 우애를 가상히 여겨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싣도록 했다. 1834년에는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비각이 둔덕 옆에 세워졌다. 오방리에는 조광익을 기리는 정려각(旌閭閣)과 오봉서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