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신계성 여표비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밀양 신계성 여표비
Stele of Sin Gye-seong, Miryang
밀양 신계성 여표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신계성 여표비
영문명칭 Stele of Sin Gye-seong, Miryang
한자 밀양 申季誠 閭表碑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72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2호
지정(등록)일 2006년 1월 1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밀양 신계성 여표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명 조식(曺植)과 함께 실천적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ㆍ1499~1562)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여표비는 어떤 인물을 잊지 않고 드러내기 위해 그가 살던 마을에 세우는 비석이다.

신계성은 영남 사림파의 우두머리인 김종직(金宗直)의 고향인 밀양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림파의 학문 자세를 지닌 군자가 되었고, 밀양 예림서원과 김해 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비는 신계성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 뒤인 1576년에 처음 세웠고, 임진왜란으로 비석과 비각이 파손되자 1634년 밀양 부사 이유달이 중건했다. 1756년 화재로 다시 훼손되자 1765년 밀양 부사 김인대가 새로 세웠다.

비석은 사암으로 된 몸체(가로 80cm, 세로 187cm)와 받침돌, 지붕돌로 이뤄져 있다. 글은 예조판서 윤급이 지었고, 몸체 머리 부분의 두전(頭篆)은 유척기가 썼다.

영문

Stele of Sin Gye-seong, Miryang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Sin Gye-seong (1499-1562),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stands in the village where he once lived.

Born and raised in Miryang, Sin Gye-seong came to follow the scholarship of the Sarim literati faction, as the faction’s leader Kim Jong-jik (1431-1492) was also from Miryang. Together with Jo Sik (1501-1572), Sin is a scholar who represents the spirit of the practical literati. He is venerated at Yerimseowon Confucian Academy in Miryang and at Sins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Gimhae.

This stele, and the pavilion housing it, were first erected in 1576. In 1634, they were remade by the local magistrate Yi Yu-dal (1579-1635) after having been destroyed in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n 1756, the pavilion and stele were again damaged in a fire, so the local magistrate Kim In-dae had them built anew in 1765.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roof-shaped capstone, with the body stone measuring 80 cm in width and 187 cm in height. The inscription on the body stone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minister of rites Yun Geup (1697-1770), while the stele’s name was calligraphed by civil official Yu Cheok-gi (1691-1767).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신계성(1499-1562)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살던 마을에 세워졌다.

밀양은 영남 사림파의 영수인 김종직(1431-1492)의 고향으로, 신계성 또한 밀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사림파의 학문을 따르게 되었다. 조식(1501-1572)과 함께 실천적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밀양 예림서원과 김해 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비석과 비석을 모신 비각은 1576년에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으로 비석과 비각이 파손된 뒤 1634년 밀양 부사 이유달(1579-1635)이 다시 세웠다. 1756년 다시 화재로 비각이 소실되고 비석이 크게 훼손되자 1765년 밀양 부사 김인대가 비석과 비각을 새로 세웠다. 비석은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졌고, 몸돌은 가로 80cm, 세로 187cm이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은 예조판서 윤급(1697-1770)이 짓고 글씨를 썼으며, 비석 맨 위에 새겨진 비석의 이름은 문신 유척기(1691-1767)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