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강세황 행서 팔곡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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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소장 표암 강세황 행서 팔곡병
Eight-panel Folding Screen with Calligraphy by Kang Se-hwang Kept at Miribeol Folk Museum, Miryang
고비룡 기자, 표암 강세황 ‘행서 팔곡병’·‘유묵’ 진품, 경남일보, 2019.5.28. 기사.
대표명칭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소장 표암 강세황 행서 팔곡병
영문명칭 Eight-panel Folding Screen with Calligraphy by Kang Se-hwang Kept at Miribeol Folk Museum, Miryang
한자 密陽 미리벌民俗博物館 所藏 豹菴 姜世晃 行書 八曲屛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범평리 406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17호
지정일 2011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점
웹사이트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소장 표암 강세황 행서 팔곡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8세기 말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화가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조상 제사용으로 쓴 글이 적힌 병풍이다.

강세황이 고려시대에 거란군을 대파한 강민첨(姜民瞻) 장군의 사당을 참배하기 위해 진주에 갔다가 후손인 강몽준에게 써 준 것으로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 시인의 오언절구(五言絕句)를 행서로 적었다. 장군의 후손으로서 제사용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연호를 넣지 않고, 호(號)가 들어가는 자리에도 자(字)를 적었다.

강세황은 시·서·화 삼절(三絶)이라고 불릴 정도로 글과 그림에 능했다. 남종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킨 당대 예술계의 총아로 단원 김홍도와 자하 신위의 스승이었다.

어릴 적부터 재주가 뛰어났지만 집안이 몰락하면서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해 환갑이 되어서야 벼슬을 얻어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영문

Eight-panel Folding Screen with Calligraphy by Kang Se-hwang Kept at Miribeol Folk Museum, Miryang

This eight-panel folding screen features calligraphy by Kang Se-hwang (1713-1791), the most renowned calligrapher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Kang Se-hwang was skilled in poetry, painting, and calligraphy, and was also a deeply insightful critic with broad knowledge. He showed remarkable talent since childhood and dedicated his life to studying classical Chinese, painting, and calligraphic works. He played a central role as the leader of the artistic community and began serving as a civil official late in life. In 1773, he was appointed mayor of Hanseong-bu (today’s Seoul), and in 1781, he supervised the creation of the portrait of King Jeongjo (r. 1776-1800).

Kang Se-hwang wrote the texts of this folding screen in 1790 when he visited the shrine of the general Kang Min-cheom (963-1021), which was located in Jinju. He calligraphed poems composed by poets from Tang China and Ming China. He gave these calligraphic texts to Kang Mong-jun (1744-1827), a descendant of the general. The texts then were made into a folding screen that was used in ancestral ritual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화가였던 강세황(1713-1791)의 글씨로 만든 8폭짜리 병풍이다.

강세황은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능했고, 해박한 지식과 높은 안목을 갖춘 비평가이기도 하였다. 어릴적부터 재주가 뛰어났으며, 평생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하였고, 예술계의 총수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773년 뒤늦게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1781년에는 정조(재위 1776-1800)의 어진 제작을 감독하기도 하였다.

이 병풍에 쓰인 글씨는 강세황이 1790년 선조인 강민첨 장군(963-1021)의 사당에 방문했을 때 쓴 것이다.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 시인들의 작품을 적었다. 장군의 후손인 강몽준(1744-1827)에게 이 글씨를 주고, 병풍을 만들어 제사 때 사용하도록 하였다.

참고자료

  • 표암 강세황 ‘행서 팔곡병’·‘유묵’ 진품, 경남일보, 2019.5.28. 기사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88889 -> 이미지 출처 / 구전에 의하면 18세기 말 조선 예술계 큰 어른이던 표암 강세황은 1790년 은열공 강민첨의 묘를 성묘하고자 진주를 찾았다. 그때 그는 한 달 정도 대곡면 월암리에 머무르면서 ‘행서 팔곡병’을 썼다고 한다. 이 병풍은 강세황이 금고 강몽준(1744~1827)에게 조상 제사 지낼 때 쓰라며 써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