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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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선생묘
Tomb of Min Yeong-hwan
민영환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민영환선생묘
영문명칭 Tomb of Min Yeong-hwan
한자 閔泳煥先生墓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36번지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8호
지정일 1973년 7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민영환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민영환 선생 묘는 대한제국기 문신인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묘소이다.

민영환은 187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외교관으로서 서양의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여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배웠다. 이후 독립협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개혁을 시도하였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내정 간섭을 비판하였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가자, 민영환은 이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처형하고 조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에 죽음으로 항거하기 위해 자택에서 자결하였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와 각국의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으며, 그의 죽음은 국민의 항일 의식을 북돋고 의병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영환의 묘는 원래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었으나, 1942년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부인과 합장하였다. 봉분 뒤쪽에 높은 언덕을 쌓고 그 위에 담을 설치한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봉분 앞에 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로는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과 향로석(香爐石: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이 놓여 있고, 좌우로 문인석(文人石: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과 망주석(望柱石: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각각 한 쌍씩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장명등(長明燈: 무덤 앞이나 절 안에 돌로 만들어 세우는 등)이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1959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는데 앞면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

영문

Tomb of Min Yeong-hwan

This is the tomb of Min Yeong-hwan (1861-1905),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his wife.

Mi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878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s a diplomat, in particular, he visited many countries in the West and tried to adopt and implement their technologies and social systems in Korea.

In 1905, when the Protectorate Treaty was forcibly made by Japan and the Korean Empire’s diplomatic right was taken away, Min asked for the cancellation of the treaty and for the five ministers who agreed upon the treaty be executed. This was not realized, and he showed his resistance by committing suicide at his house. He left his will to the foreign diplomatic ministers in Korea and the twenty million people of Korea. His death served as a catalyst motivating a nationwide anti-Japanese sentiment and civilian army uprisings.

The tomb was originally located in Suji-gu District, north of the current location, but was moved here in 1942 by his descendants. Behind the tomb mound, there is a crescent-shaped hill atop which a stone wall was built. In front of the tomb mound, there is a stone table and a stone incense table,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stone pillars and a stone lantern at the center. There is also a tombstone erected in 1959. Its epitaph was written by Syngman Rhee (1875-1965), the first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대한제국기의 문신인 민영환(1861~1905)과 부인의 묘소이다.

민영환은 187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외교관으로서 서양의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여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배우고 개혁을 시도하였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가자, 민영환은 이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처형하고 조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에 죽음으로 항거하기 위해 자택에서 자결하였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와 각국의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으며, 그의 죽음은 국민의 항일의식을 북돋고 의병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영환의 묘는 원래 수지구에 있었으나, 1942년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봉분 뒤쪽에는 초승달 모양의 언덕을 쌓고 그 위에 담을 설치하였다.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좌우로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장명등이 있다. 묘역의 앞쪽에는 1959년에 건립된 묘비가 있는데, 묘비의 글씨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1875~1965)이 썼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민영환선생묘(閔泳煥先生墓) 문화유산 민영환선생묘(閔泳煥先生墓)
민영환(閔泳煥) 인물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을사조약 사건 을사조약 1905년
을사오적 개념 을사오적
고종 인물 고종 1863~1907
이승만(李承晩) 인물 이승만(李承晩) 1875~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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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arget Relation
민영환선생묘(閔泳煥先生墓) 민영환(閔泳煥) ~의 묘이다.
민영환(閔泳煥) 을사조약 ~와 관계가 있다.
을사오적 을사조약 ~와 관계가 있다.
고종 민영환 ~와 관계가 있다.
민영환선생묘(閔泳煥先生墓) 이승만(李承晩) ~와 관계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