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군 류희림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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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군 류희림 묘역
Tombs of Ryu Hui-rim’s Family
대표명칭 문양군 류희림 묘역
영문명칭 Tombs of Ryu Hui-rim’s Family
한자 文陽君 柳希霖 墓域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로 363 (오금동, 오금근린공원)
지정(등록) 종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9호
지정(등록)일 2013.07.18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관리자 문화유씨종친회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분묘 3基, 석물 16基, 토지 534.8㎡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 문신인 류희림 묘역은 묘지 제도에 가부장적 질서가 확립되기 이전에 조성되어 위쪽에는 문양군 류희림과 정부인 밀양 박씨의 합장묘가 있고, 아래쪽에는 그의 아버지인 문원군 류복룡과 정부인 평강 채씨의 쌍분묘가 있다.

류희림은 명종 16년(1561)에 문과에 합격하였고 사헌부 집의, 좌승지, 예조참판 등을 두루 거쳤다. 성균관 재학 시절에는 동료들과 함께 불교진흥 정책의 시정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01년에 죽은 뒤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보좌한 공을 인정받아 1604년에 호성공신 3등 문양군에 봉해졌다. 묘 봉분에는 호석*을 설치하였고, 묘표 비좌*,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한 쌍이 있다.

류복룡은 영평 현령을 지냈는데, 아들 류희림의 신분이 높아져서 이조참판 문원군에 봉하였다. 그의 묘에는 묘표,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한 쌍, 신도비*가 있다.

오금공원에 유일하게 세워진 류복룡 신도비는 선조 12년(1579)에 세웠다. 류희림의 부탁을 받은 이산해가 비문을 짓고 썼는데, 전액*에는 ‘신도비’로 되어 있으나, 본문의 첫 구절에는 ‘묘명(墓銘)’으로 달리 적은 점이 눈에 띈다.


  • 호석: 무덤의 외부를 보호하려고 돌로 만든 시설물
  • 묘표: 죽은 사람의 이름, 행적 등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표석
  • 비좌: 비신(碑身)을 세우려고 홈을 판 자리
  • 혼유석: 제사를 지낼 때 묻힌 이의 영혼이 나와서 앉는 자리
  • 상석: 봉분 앞에 놓는 커다란 돌상
  • 향로석: 향로와 향약을 올려놓는 돌
  • 망주석: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 문인석: 문관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 신도비: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석
  • 전액(篆額): 전자체로 쓴 비석이나 현판의 글씨

영문

Tombs of Ryu Hui-rim’s Family

These are the tombs of the family of Ryu Hui-rim (1520-1601), a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Ryu Hui-rim and his wife Lady Park are interred together in the tomb mound at the back, whilst his father Ryu Bok-ryong and mother Lady Chae are interred in the twin tomb mounds at the front.

Ryu Hui-ri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61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to refuge and was posthumously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His father, Ryu Bok-ryong, was a local government official.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minister of personnel after Hui-rim obtained prestigious social status as a high-ranking official.

Next to the tomb of Ryu Bok-ryong is a stele erected in 1579 recording his life and achievements. The epitaph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Yi San-hae (1539-1609), a civil official and renowned writer.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인 류희림(1520-1601)과 그 가족들의 묘이다. 뒤쪽의 봉분은 류희림과 부인 박씨의 합장묘이고, 앞쪽의 두 봉분은 류희림의 아버지 류복룡과 어머니 채씨의 쌍분묘이다.

류희림은 1561년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를 호종한 공을 인정받아, 사망한 뒤인 1604년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류복룡은 지방 관원이었는데, 아들인 류희림이 고위 관직을 맡으며 신분이 높아져서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류복룡의 묘 옆에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이산해(1539-1609)가 짓고 썼으며, 비석은 1579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