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of Daeseungsa Temple, Mung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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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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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of Daeseungsa Temple, Mungyeong |
한자 | 聞慶 大乘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국보 제321호 |
지정(등록)일 | 2017년 8월 31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점 |
웹사이트 |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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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나무판을 조각해서 만든 후불탱화*로, 불화(佛畫)와 조각을 절묘하게 접목했다 해서 흔히‘목각탱(木刻幀)’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대승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데, 판목 10장을 조합하여 아미타여래가 말씀하는 장면과 극락세계에 구품왕생(九品往生)**하는 장면을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이 설법상은 숙종 1년(1675)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부처와 보살상을 조각한 수법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래 영주 부석사 금색전에 모셔져 있다가 고종 6년(1869)에 대승사로 옮겨졌다. 이때 발견된 소송 문서 11점이 전하며, 이 중 4점은 보물 제575호(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관계문서)로 지정되었다.
- 후불탱화 : 불상 뒤에 모시는 탱화
- 구품왕생 : 중생들이 극락에 갈 수 있는 9가지 방법
영문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of Daeseungsa Temple, Mungyeong
This altarpiece was made in 1675. It depicts the Western Paradise of Amitabha Buddha on 10 connected woodblocks.
In the center of the altarpiece is the main buddha, Amitabha, depicted seated on a lotus pedestal. Around him are 24 figures of bodhisattvas, disciples, and the four guardian kings, each with their name written next to them.
It is the oldest of the remaining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s in Korea. Being considerably large (3.5 m in width and 2.8 m in height), it also represents an outstanding level of craftsmanship.
This altarpiece was originally enshrined at Buseoksa Temple in Yeongju but was moved here in 1869. It started a dispute between the two temples from 1869 to 1876. There are 11 pieces of legal documents related to the dispute, four of which are designated as Treasure No. 575.
영문 해설 내용
이 설법상은 1675년에 제작된 것으로, 총 10장의 목판을 연결해서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를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연꽃 대좌 위에 앉아있다. 주변에는 보살, 제자, 천왕상 등 24구의 존상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각 존상 옆에는 이름을 적었다.
현재 남아 있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가 크며, 조각 수준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로 약 3.5m, 세로 약 2.8m이다.
원래 영주 부석사 금색전에 모셔져 있다가 1869년에 대승사로 옮겨졌다. 1869년부터 1876년까지 이 설법상을 둘러싸고 두 사찰 간에 분쟁이 있었다. 당시의 소송 문서 11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중 4점이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