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
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 Buddhist Painting of Yangjinam Hermitage of Gimnyongsa Temple, Mungyeong (Guardian Deit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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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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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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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uddhist Painting of Yangjinam Hermitage of Gimnyongsa Temple, Mungyeong (Guardian Deities) |
한자 | 聞慶 金龍寺 養眞庵 神衆圖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김용길 46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2019년 10월 21일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불도 |
시대 | 1880년 제작 |
수량/면적 | 1폭 |
웹사이트 | 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문경 김룡사 양진암 신중도는 세로 139.4cm 가로 106cm의 불화로 1880년에 19세기 후반 경북 일대에서 주로 활동한 하은 응상(霞隱㒣祥)이 조성한 것이다. 응상의 섬세한 묘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1785년 봉곡사 신중도를 모본으로 그린 불화이다.
김룡사 양진암본은 복식의 채색에서 적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밝은 색감의 청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색은 19세기 후반에 청나라에서 들여온 밝은 색감의 안료로 그로 인해 화면에 보색대비가 크게 되었으며, 흰색 바탕의 병풍에 먹으로 간소한 산수가 표현되었다. 이러한 표현 기법은 기존의 봉곡사 신중도를 모본으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화풍을 모색하였던 것을 볼 수 있기에 사불산파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 형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응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로써 그 가치가 높다.
영문
Buddhist Painting of Yangjinam Hermitage of Gimnyongsa Temple, Mungyeong (Guardian Deities)
This painting enshrined in Inbeopdang Hall of Yangjinam Hermitage depicts various guardian deities who protec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The painting was made in 1880 by the monk artisan Eungsang as a recreation of the Guardian Deities painting (1785) enshrined at Bonggoksa Temple in Gimcheon.
Measuring 139.4 cm in height and 106 cm in width, the painting is characterized by the use of red as the primary color for the clothing, the vivid blue made using pigments introduced from China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striking contrast of the complementary colors. The folding screen behind the figures features landscapes drawn with ink on a white canvas. These unusual details are a testament to Eungsang’s relentless efforts to develop his unique style.
영문 해설 내용
양진암 인법당에 모셔져 있는 신중도는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신을 그린 그림이다. 1785년에 그려진 김천 봉곡사의 신중도를 모본으로 하여, 1880년 승려 화가 응상이 조성하였다.
이 신중도는 가로 106cm, 세로 139.4cm 크기이다. 인물들의 옷을 채색할 때 적색을 기본으로 하고, 19세기 후반에 청나라에서 들여온 밝은 색감의 청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화면에 보색대비가 크게 되도록 하였다. 인물들 뒤에 세운 흰색 바탕의 병풍에는 먹으로 산수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 기법은 응상이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면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