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육 최양선생 유허비
만육 최양선생 유허비 Stele of Choe Yang |
|
대표명칭 | 만육 최양선생 유허비 |
---|---|
영문명칭 | Stele of Choe Yang |
한자 | 晩六 崔瀁先生 遺墟碑 |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360-2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81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6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근대인물/사상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만육 최양선생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유허비는 선현들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길이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만육 최양선생 유허비는 고려말의 대표적인 수절신 최양을 기리기 위해 그가 잠시 머물러 살던 곳에 조선말 고종 8년(1871)에 후손들이 건립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며, 비문은 한말의 대학자 기정진이 지었다.
최양은 전주 최씨로 외삼촌인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웠다. 고려 우왕 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보문각 대제학,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진안 팔공산에 들어가 3년을 세상을 피해 숨어서 살았으며, 이후 전주 대승마을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이 유허비는 이런 연유로 이곳에 건립되었다. 조선 태조가 그를 친구로 예우하여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영문
Stele of Choe Yang
This stele honors Choe Yang (1351-1424), a loyal subject of the late Goryeo period. It was erected by Choe's descendants in 1871.
Choe Yang, from the Jeonju Choe Cla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76 and served various high official posts. He was a nephew and disciple of Jeong Mong-ju, a famous scholar and an influential official of the late Goryeo period. When the Goryeo dynasty fell in 1392, Choe resigned and temporarily stayed in a village in Bansong-ri, before he moved to Palgongsan Mountain to live in seclusion for three years.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King Taejo (r. 1392-1398), bestowed him official posts several times out of respect, but Choe kept refusing. Later, he moved to Daeseung Village in present-day Wanju, Jeollabuk-do Province, where his ancestors were buried. He remained loyal to Goryeo until his death.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is place where he temporarily lived. The epitaph was composed by Gi Jeong-jin (1798-1879), an eminent scholar of the lat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 말기의 충신 최양(1351-1424)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1871년에 세운 비이다.
최양은 전주 최씨 가문 출신으로 137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고위 관직을 지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이자 문신인 정몽주가 그의 외삼촌이었으며 그에게 학문을 배웠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진안 반송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가 팔공산에 들어가 3년을 숨어지냈다. 조선 태조가 그를 예우하며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이후 가문의 선산이 있는 대승마을(오늘날의 전라북도 완주)로 이주하여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말년을 보냈다.
이 비는 최양이 잠시 머물러 살던 곳을 기념하여 세웠다. 비문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기정진(1798-1879)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