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눌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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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눌 묘
대표명칭 류사눌 묘
한자 柳思訥 墓
주소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 산 200-1
지정번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호
지정일 1990.11.09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소유자 문화류씨 문숙공파 종회
관리자 인천시 서구
시대 조선
수량/면적 1기 / 1,257.6㎡



해설문

국문

문숙공(文肅公) 류사눌(1375∼1440)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139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홍주 목사, 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대제학 재직 시 악학제조를 겸하여 박연(朴堧, 1378~1458)과 함께 『아악보(雅樂譜)』를 완성하였으며, 1435년에는 구악(舊樂)을 정리하는 등 맹사성(孟思誠, 1360~1438), 박연 등과 함께 조선 초기의 악학 정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으며 그 앞에는 장대석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았다. 장명등 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영문

This is the tomb of Ryu Sa-nul (1375-1440), a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93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cluding local governo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r. 1418-1450), he contributed remarkably to the development of music studies, along with other great musicians such as Maeng Sa-seong (1360-1438) and Park Yeon (1378-1458).

There are two mounds in this tomb. One is the combined mound of Ryu Sa-nul and his first wife, and the other is the mound of his second wife. In front of the tomb mounds are a stone table, stone incense table, stone lantern, and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인 류사눌(1375~1440)의 묘이다. 류사눌은 1393년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관을 비롯한 다양한 관직을 거쳤다. 세종대에는 맹사성, 박연과 같은 훌륭한 음악가들과 함께 악학 정비에 크게 기여하였다.

봉분은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류사눌과 부인의 합장묘이고, 다른 하나는 후처의 묘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과 한 쌍의 문인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