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량 선생 묘
류량선생묘 Tomb of Ryu 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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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류량선생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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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Ryu Ryang |
한자 | 柳亮先生墓 |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 산21-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기념물 제78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9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류량 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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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류량 선생 묘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부인인 연안 이씨의 묘와 나란히 놓여있다. 무덤이 있는 땅은 전체적으로 3단의 계단식 모양인데 맨 위에는 무덤과 묘비를 두고 가운데는 장명등과 문인(文人)의 석상을 좌우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아래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을 놓았다.
류량은 고려 우왕 8년(1382)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392년 조선 왕조를 세우는데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다.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조선 초기의 제도 확립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 태조 7년(1398) 왜구가 침입하자 이들을 무찔렀으나 포로를 놓쳐 그 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나서 정종 2년(1400) 방간의 난을 평정하였고, 태종 4년(1404)에는 대사헌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친 후 우의정의 자리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영문
Tomb of Ryu Ryang
This is the tomb of Ryu Ryang (1355-1416), a civil official who served at the turn of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and his wife Lady Yi.
Ryu Ry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82 and served various positions in the Goryeo government. He participated in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in 1392, which earned him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and the opportunity to serve the newly established dynasty in many government posts. In 1398, he played a key role in defeating Japanese pirates but was exiled because his prisoners-of-war managed to excape. He was released soon after and helped quell a rebellion in 1400 led by Yi Bang-gan (1364-1421), the fourth son of King Taejo (r. 1392-1398). He continued to serve key government positions and was promoted to third state councilor in 1415.
The tomb consists of two squre tomb mounds: the one on the left belongs to Ryu and the one on the right belongs to Lady Yi. The base of the mounds are surrounded by stone bricks to help to prevent them from collapsing. In front of each tomb mound are a tomb stone, a stone table, and a stone incense table. Other stone structures in the tomb area include a stele on the right, a stone lantern, two stone pillars, and two statues of civil official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류량(1355-1416)과 부인 이씨의 묘이다.
류량은 1382년 과거에 합격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이후 1392년 조선 왕조를 세우는데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고, 새로운 조정에서 여러 주요 관직을 거쳤다. 1398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들을 무찔렀으나 포로를 놓쳐 그 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나서 1400년 태조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의 난을 평정하였고, 이후 여러 벼슬을 거친 후 1415년 우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사각형으로 조성된 두 무덤은 왼쪽이 류량의 묘이고 오른쪽은 부인 이씨의 묘이다. 무덤의 아랫부분에는 무덤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석을 둘렀다. 각 무덤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묘역에 있는 다른 석물로는 비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