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 양희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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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양희지 묘
Tomb of Yang Hui-ji
대표명칭 대봉 양희지 묘
영문명칭 Tomb of Yang Hui-ji
한자 大峰 楊熙止 墓
지정(등록) 종목 울산광역시 기념물
지정(등록)일 2021년 8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1,000㎡
웹사이트 대봉 양희지 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의 문신 양희지의 무덤이다. 양희지는 대구 출신으로 본관은 중화(中和)이다. 학성이씨 이종근의 딸과 혼인한 뒤, 당시 풍습에 따라 처가살이를 하며 울산 사람이 되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이후 충청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등을 지냈다. 연산군 10년(1504) 2월, 66세로 사망하고, 그 해 10월 장례를 치뤘다. 중종 2년(1507) 11월, 중종은 양희지의 업적을 칭찬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내려주며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비석은 전란 중에 잃어버려 순조 30년(1830)에 그의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비문은 경릉참봉 정규석(鄭奎錫)이 지었으며, 글씨는 학성이씨 이근오(李覲吾)가 썼다. 대구시 파동 오천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대봉집』이 있다. 정조 11년(1787)에 채제공이 신도비*명을 지었다.

  • 배향: 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 신도비: 죽은 사람의 평생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운 비

영문

Tomb of Yang Hui-ji

This is the tomb of Yang Hui-ji (1439-1504),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ang Hui-ji was originally from Daegu, but after marrying a daughter of Yi Jong-geun of the Hakseong Yi clan, he settled in the Ulsan area where his wife’s family lived, following the customs of the time.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74 and served in various government posts, including governor of Chungcheong-do Province. After his death, King Jungjong (r. 1506-1544) honored him by bestowing a royal message of condolence praising his achievements and ordering veneration rituals to be performed in his honor.

The stone statue and stone table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are believed to date from the time of the tomb’s construction. The tombstone was erected in 1830 by his descendants, after the original was los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 양희지(1439-1504)의 묘이다.

양희지는 대구 출신이나, 학성이씨 이종근의 딸과 혼인한 후 당시 풍습에 따라 처가가 있는 울산 지역에서 살았다. 1474년 과거에 급제한 후 충청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양희지가 세상을 떠난 후 중종은 그의 업적을 칭찬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내려주며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묘 앞에 있는 석인상과 상석은 묘소 조성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묘비는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고 하며, 지금의 묘비는 1830년 그의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