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각자
농암 각자 Inscription Related to Yi Hyeon-b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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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농암 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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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Inscription Related to Yi Hyeon-bo |
한자 | 聾巖 刻字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산11-17번지 |
소장처 | Inscription Related to Yi Hyeon-bo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
지정(등록)일 | 1973년 8월 31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석각류 |
수량/면적 | 일괄 |
웹사이트 | 농암각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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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농암 각자는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가 지은 애일당의 원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새긴 글자이다.
이현보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다. 이현보의 집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분강 기슭에는 귀먹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이현보는 1542년 이 바위 위에서 시조 농암가(聾巖歌)를 지었으며, 연로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중종 7년(1512) 이 바위 위에 ‘애일당(愛日堂)’이라는 별당을 짓고, 아버지를 비롯한 이웃 마을 노인 9명을 모시고 잔치를 열었다.
일제강점기에 예안에서 도산까지 도로를 개설하게 되면서 애일당은 영지산 위쪽으로 옮겨졌고, 이때 애일당의 원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 글자를 새겼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농암 선생 정대 구장(壟巖 先生 亭臺 舊庄)’이라는 여덟 글자이며, ‘농암 선생이 정자를 지었던 옛 자리’라는 뜻이다. 이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애일당은 1975년 도산면 분천리로 옮겨졌고, 농암 각자 역시 글자가 새겨진 부분만 바위에서 잘라내 함께 옮겼다. 애일당과 각자는 모두 2005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농암 각자는 안동 지역에 남아 있는 각자 중 가장 크며, 글자 하나의 크기는 대략 75㎝ 정도이다.
영문
Inscription Related to Yi Hyeon-bo
These rock inscriptions were made to commemorate the site where Aeildang Hall, built by the scholar and civil official Yi Hyeon-bo (1467-1555, pen name: Nongam), originally stood.
Aeildang Hall was originally built next to Gwimeokbawi Rock on the slope of a mountain about 400 m away from Yi Hyeon-bo’s house. He held a banquet here for his 94-year-old father Yi Heum and eight other elders living in the village. The name Aeildang means “Hall of the Cherished Day” and can be interpreted to mean that each remaining day spent with one’s parents must be cherish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eildang Hall was moved to the top of Yeongjisan Mountain due to the construction of a road. It was at this time that these rock inscriptions were made at the hall’s original site. There are eight characters which read “The Former Site of Master Nongam’s Pavilion.” When Aeildang Hall was moved to Buncheon-ri in 1975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these inscriptions were carved out of the rock face and placed with the hall. Both the hall and the inscriptions were moved again in 2005 to their current location at the Historic Site Related to Yi Hyeon-bo.
This is the largest remaining inscription in the Andong area, with each character measuring about 75 c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이 각자는 이현보(1467-1555, 호: 농암)가 지은 애일당의 원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새긴 글자이다.
애일당은 원래 이현보의 집에서 약 400m 떨어진 ‘귀먹바위’라는 바위 옆에 있었다. 이현보는 94세 아버지 이흠과 이웃 마을 노인 8명을 모시고 잔치를 열었다. 건물의 이름인 ‘애일(愛日)’은 ‘부모를 모실 날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도로 공사로 인해 애일당은 영지산 위쪽으로 옮겨졌고, 이때 애일당의 원래 자리에 이 글자가 새겨졌다. 바위에 새겨진 여덟 글자는 ‘농암 선생이 정자를 지었던 옛 자리’라는 뜻이다. 이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애일당은 1975년 분천리로 옮겨졌고, 농암 각자 역시 글자가 새겨진 부분만 바위에서 잘라내 함께 옮겼다. 애일당과 각자는 모두 2005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농암 각자는 안동 지역에 남아 있는 각자 중 가장 크며, 글자 하나의 크기는 대략 75㎝ 정도이다.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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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보 | Actor | 이현보(李賢輔,_ 1467-1555) | |
농암_각자 | Object | 농암_각자 | |
애일당 | Place | 애일당 | |
분강 | Place | 분강 | |
영지산 | Place | 영지산 | |
일제강점기_도로_건설 | Event | 일제강점기_도로_건설 | |
농암_유적지_정비 | Event | 농암_유적지_정비 | |
안동댐_건설 | Event | 안동댐_건설 | |
농암_종택 | Place | 농암_종택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
애일당 | 이현보 | constructor / founder |
농암_각자 | 애일당 | isRelatedTo |
애일당 | 일제강점기_도로_건설 | isRelatedTo |
애일당 | 안동댐_건설 | isRelatedTo |
애일당 | 농암_유적지_정비 | isRelatedTo |
애일당 | 분강 | formerLocation |
애일당 | 영지산 | formerLocation |
농암_각자 | 애일당 | isNear |
농암_종택 | 애일당 | isNear |
참고자료
- 농암종택, 국어교사 박전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8.12.5. https://blog.naver.com/9594jh/221412623203 → 농암은 ‘귀 먹은 바위’라는 뜻으로, 이현보가 스스로 지은 호이기도 하다. 분천동 옛 애일당터에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글자부분만을 잘라 옛 애일당 아래로 옮겼다가 2005년 현 위치로 다시 옮겼다.
- 농암각자, 디지털안동문화대전 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76 → 농암각자는 일제강점기 예안~도산 간 지방도로 개설로 인해 당시 분천동(汾川洞)에 위치하던 이현보의 정자인 애일당(愛日堂)을 1차로 인근 영지산 위로 옮기면서 옛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바위에 새긴 글씨이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12번지 농암 종택 애일당 앞 강변에 위치한다. 강 건너 암벽 등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농암각자는 전면을 다듬은 네 개의 큰 바위 면에 한자로 ‘농암선생정대구장(壟巖先生亭臺舊庄)’이라는 8자가 두 자씩 새겨져 있다. 한 글자의 크기는 대략 75㎝ 정도로 매우 큰 글씨로 새겨졌다. 경치 좋은 곳의 바위벽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그 유래가 신라시대까지 소급된다고 하나, 이와 같이 큰 글씨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동 지역의 음각 글씨로는 가장 크다. 그중 ‘농암(聾巖)’ 두 자를 새긴 바위는 길이 5m, 두께 2.5m, ‘정대(亭臺)’ 두 자를 새긴 바위는 길이 4m, 너비 2m, 두께 2m, ‘구장(舊庄)’ 두 자를 새긴 바위는 길이 4m, 너비 3m, 두께 3m의 크기이다. 안동댐 건설로 물속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바위에서 글자만 떼어내 1975년 도산면 분천리 산11-1번지에서 분천리 산11-17번지로 옮겼으나, 이후 농암유적지정비사업으로 인하여 도산면 가송리 현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 [애일당]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