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생가지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남명 조식 생가지
Birthplace of Jo Sik
작성자 bb0336, 남명 조식 생가지와 곽재우, 흐름과 변화,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남명 조식 생가지
영문명칭 Birthplace of Jo Sik
한자 南冥 曺植 生家址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488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48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83㎡
웹사이트 남명 조식 생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조선 중기 때의 대학자인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이 태어난 곳이다. 본가는 삼가현 판현이고, 이곳 토골[토동]은 조식의 외가이다. 선생은 1501년(연산군 7) 6월 26일에 외가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옛날 어느 풍수도인이 이곳 삼가면 토동(兎洞)을 둘러보고 암토끼가 달에 있는 수토끼를 쳐다보고 누워있는 형상으로 토끼의 배에 터를 잡은 집이 명당으로 1년 내에 현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토끼의 배 부분에 위치한 집이 남명의 외가였는데, 1년 뒤 예언대로 남명이 태어났다. 선생이 태어나던 날에는 우물에서 무지개 빛이 뻗치어 온 방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조식의 생가는 1970년대까지 건물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새마을운동 당시 헐리어 폐허로 있던 것을, 현재 건물을 복원하여 정비중이다.

영문

Birthplace of Jo Sik

This was the birthplace and childhood home of Jo Sik (1501-1572), an eminent Confucian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is house belonged to his mother’s family, while his father’s family lived in the nearby village of Hapan-ri. Jo Sik was born and lived here until 1405, when his father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the family moved to the capital, Hanyang (today’s Seoul).

This house was built on a very auspicious site according to Korean feng shui principles. It is said that one year before Jo Sik’s birth, a geomancer was passing by the house and foretold that a sage would be born here. According to the story, on the day that Jo Sik was born, a rainbow burst from a nearby well and filled the room where he was delivered with light.

The current buildings in the complex were newly built during a restoration of the property which begun in 2009. The original buildings are said to have been torn down in the 1970s during the New Village Movement. The complex includes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gate quarters, and other building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조식(1501-1572)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조식의 본가는 하판리이고, 이곳은 외가가 있던 곳이다. 조식은 외가에서 태어나 1504년까지 살다가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서울로 이주했다.

집이 위치한 이 자리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꼽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식이 태어나기 1년 전 어떤 도인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곳에서 현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조식이 태어나던 날에는 근처 우물에서 무지개 빛이 뻗어 나와 방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들은 2009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의 건물들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에 헐렸다. 경내에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를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