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정사
남강정사 Namgangjeongsa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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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남강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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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Namgangjeongsa House |
한자 | 南崗精舍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 65-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64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8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순절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남강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남강정사는 대한 제국 말, 충신 장태수가 살았던 곳이다. 이 가옥은 내부협판을 지낸 그의 부친 장한두가 1800년경에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 석재로 40cm 정도의 축대를 쌓은 후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지은 초가집이다. 집의 가운데 큰방을 두었고 그 좌우에 방과 대청을 꾸몄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이 집은 사라져 가는 전북 지방 민가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장태수는 1841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구 상신리) 서둔마을에서 태어났다. 철종 12년(1861) 약관 21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갔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비분을 금치 못하고 낙향하였다. 일본 헌병이 찾아와 천황이 하사하는 돈을 받으라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하며 통지서를 내놓았으나, 그는 “비록 나라는 망하였으나 대한의 고위직 신하로 어찌 더러운 돈을 받느냐.”라며 일본 헌병을 꾸짖으며 호통하였다. 일본 헌병이 돌아간 후 그는 “이때가 바로 죽을 때이다.”라고 말하며 단식을 단행하던 중에 동포에게 주권 회복을 호소하는 〈고대한동포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단식한 지 27일 만인 1910년 11월 27일 이곳에서 순국하였다.
- 내부협판: 조선 말기, 내부대신의 바로 아래 벼슬.
영문
Namgangjeongsa House
Namgangjeongsa House was the residence of Jang Tae-su (1841-1910), a loyal subjec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around 1800 by his father, Jang Han-du.
Jang Tae-su passed the military state examination in 1861 and served various government posts. After the annexation of Korea by Japan on August 22, 1910, Jang returned to his hometown full of indignation.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came to Jang offering money from the emperor of Japan, persuading and threatening him to comply. He furiously rebuked the Japanese militia, saying, “The country is ruined, yet how can you expect a high-ranking official of the Korean Empire to accept your dirty money?” When the militia left, Jang declared, “This is the time for me to die,” and willingly commenced fasting. Twenty-seven days later, on November 27, 1910, he died as a martyr for the country.
The house has a modest thatched roof and is built on a foundation of stacked stones. It consists of a small underfloor-heated room, a large underfloor-heated room, and a wooden-floored hall. Given the house’s overall style, it is a good example of a traditional commoner’s house in the Jeollabuk-do region.
영문 해설 내용
남강정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충신 장태수(1841-1910)가 살던 집이다. 그의 아버지인 장한두가 1800년경에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장태수는 1861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그러나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비분을 금치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 헌병이 찾아와 일본 천황이 하사하는 돈을 건네며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하였으나, 그는 “비록 나라는 망하였으나 대한제국의 고위직 신하로 어찌 더러운 돈을 받느냐.”라며 일본 헌병을 꾸짖으며 호통하였다. 일본 헌병이 돌아간 후 그는 “이때가 바로 죽을 때이다.”라고 말하며 단식을 단행하였고, 27일 만인 1910년 11월 27일 이곳에서 순국하였다.
자연 석재로 축대를 쌓은 후 지은 소박한 초가집이며, 작은방, 큰방,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전북 지방 민가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