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구산동 고분군 1호분
김해 구산동 고분군 1호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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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김해 구산동 고분군 |
해설문
국문
김해 구산동 고분군 1호분은 수로왕비릉에서 동북쪽으로 100∼2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무덤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삼산리(三山里) 고분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무덤은 경상남도 기념물 223호인 구산동 백운대 고분과 비슷한 무덤 구조를 보여 준다. 원래 이들은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에 별도로 분리되었다.
고분 안에 있는 돌방의 벽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쌓았고 좁혀진 천장은 2장의 돌로 덮었다. 무덤은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에 무덤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구조이며 출입문은 남쪽에 두었다. 돌방 바닥에는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ㄱ’ 자 모양의 널받침이 확인되어 추가로 이루어진 매장을 포함해 두 차례의 매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계통의 토기와 금동제 유물 등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6세기 말에 무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산동 고분군은 금관가야 멸망 후에 남아 있던 왕족의 무덤 또는 신라 지배층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무덤 형식이 가야 계통에서 신라 계통으로 바뀌는 모습은 김해 지역이 가야에서 신라로 바뀌던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영문
Tomb No. 1
This tomb is presumed to date to the late 6th century. It likely belonged to a member of the Geumgwan Gaya royal family who remained in the Gimhae area after Geumgwan Gaya was annexed in 532 by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or to a member of the Silla ruling class.
The tomb consists of a stone chamber, a corridor, and an entrance at the south. The stones of the chamber are stacked such that the walls curve inwards as they go up, and the narrow ceiling is enclosed with two large stones. On the floor is an L-shaped stone slab upon which a wooden coffin would have been placed. Its shape suggests that there was a series of two burials in this tomb. Excavated artifacts include Silla pottery and gilt-bronze items. The tomb’s shape and its artifacts demonstrate a transition from the Gaya style to the Silla style, attesting to the shift of the local ruling class from the Gaya confederacy to the Silla kingdom.
영문 해설 내용
1호분은 6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532년 금관가야가 멸망한 이후 김해지역에 남아 있던 금관가야 왕족 또는 신라 지배층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은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과 무덤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구조이며 출입문은 남쪽에 두었다. 돌방의 벽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쌓았고 좁혀진 천장은 2장의 돌로 덮었다. 돌방 바닥에서는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널받침이 확인되었으며, 두 차례의 매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신라 계통의 토기와 금동제 유물 등이 있다. 무덤의 형식이나 출토 유물이 가야 양식에서 신라 양식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어, 김해 지역을 다스리는 세력이 가야에서 신라로 바뀌던 당시의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