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면 장군 유적
| 김면장군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M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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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면 장군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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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김면장군유적 |
|---|---|
| 영문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Myeon |
| 한자 | 金沔將軍遺蹟 |
|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칠등길 138 (고곡리) |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1988년 9월 23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 수량/면적 | 30,992㎡ |
| 웹사이트 | 김면 장군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송암(松菴) 김면(1541~1593) 장군과 관련된 곳이다. 김면 장군의 묘소, 신도비(神道碑), 도암사(道巖祠), 도암재(道巖齋), 도암서당(道巖書堂) 등으로 구성된 사적지**로서 1988년에 한꺼번에 묶여서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면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 거창 등의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의병 대장이라는 교서***를 받았다. 1593년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선산 전투를 앞두고 충청도, 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 병을 얻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씀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현종 7년(1667)에 유학자들이 장군을 그리며 생각하는 사당을 대가야읍에 세웠다. 이후 정조 13년(1789)에 사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신도비를 세워 그의 높은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있다.
- 순국: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
- 사적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시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
- 교서: 왕이 신하, 백성, 관청 등에 내리던 문서
- 개령: 현재의 김천 지역
- 충절: 충성스러운 태도
- 현종 7년은 1666년임. 디지털고령문화대전에서도 사당 건립 시기를 1666년으로 언급함. http://aks.ai/GC02901140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Myeon
This historic site honors the scholar Kim Myeon (1451-1593), who also led a righteous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When the war broke out in 1592, Kim organized a righteous army in the areas of Goryeong and Geochang. He achieved a series of victories and was officially appointed as a commander. In 1593, he was promoted to the post of army commander of West Gyeongsang-do Province. He later joined forces with other armies from Chungcheong-do and Jeolla-do Provinces, setting up camp in Geumsan and Gaeryeong (today’s Gimcheon area), where they prepared to drive out enemy forces from Seonsan (present-day Gumi). However, he fell ill during this time. Before passing away, he famously said, “I have known only my country, not my own self,” expressing his deep loyalty.
The historic site includes Kim’s tomb, a stele that records his life and achievements, and several memorial facilities such as Doamseowon Confucian Academy, Doamseodang Village Study Hall, and Doamjae Ritual House. Doamseowon Confucian Academy was founded in 1666 by local Confucian scholars to honor Kim. Originally located in Daegaya-eup,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near Kim’s tomb in 1789, at which time the memorial stele was also erected. However, the academy was dismantled in 1868 as part of a nationwide decree to abolish Confucian academies and private shrines. In 1903, Doamseodang Village Study Hall was built in its place to continue commemorating Kim’s legacy. In 1975, Doamjae Ritual House was established to manage the site and conduct veneration rituals. The current Doamseowon Confucian Academy, which includes a lecture hall and shrine, was built in 2002.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김면(1451-1593)을 기리는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은 고령, 거창 등의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여 의병 대장이라는 교서를 받았고, 1593년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충청도, 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지금의 김천 지역)에 주둔하며, 선산(지금의 구미 지역)의 적을 격퇴할 준비를 하던 중 병을 얻었다. 김면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씀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이 유적지는 김면의 묘소,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 김면을 기리는 도암서원, 도암서당, 재실인 도암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666년 고령 지역 유학자들이 김면을 기리는 도암서원을 대가야읍에 세웠다가, 1789년에 묘소 옆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묘소 입구의 신도비도 이때 세웠다. 서원은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대신 1903년 도암서당을 지어 김면을 추모하였다. 1975년 도암재를 세워 묘소를 관리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다가, 2002년 강당과 사당 등을 갖춘 도암서원을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