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 삭발바위(공주 마곡사)
공주 마곡사 (김구 선생 삭발바위) Rock of Kim Gu’s Ordination as a Buddhist Mo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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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공주 마곡사 (김구 선생 삭발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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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Rock of Kim Gu’s Ordination as a Buddhist Monk |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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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20
삭발바위는 백범당 뒤쪽 백범명상길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바위이다. 또한 백범교라는 나무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서면 보이는 바위이다. 이름 그대로 김구선생이 삭발을 했던 바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범 김구는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황해도에서 선봉장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이후 의병활동에 가담하였으며, 1896년 3월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처단하여 투옥되었다. 그러나 1898년 3월 탈옥하였고, 충청도와 전라도지역을 다니면서 은신하다가 그 해 가을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듬해 봄 마곡사를 떠났지만,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약 1년여 동안 승려생활을 하는 등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김구선생과 마곡사의 인연은 1898년 늦가을 경 공주 갑사에서 ‘이(李)서방’이라는 공주 사람을 만났고, 그 인연을 통해 마곡사에서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승려생활을 했던 것이다. 마곡사는 김구선생이 승려생활을 했던 장소라는 점,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했던 바위가 있다는 점 등으로 의미를 갖는 곳이다.
2024
김구 선생 삭발바위는 백범 김구가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을 했던 바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삭발바위는 백범당 뒤쪽 백범명상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고, 백범교라는 나무다리를 건너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다. 백범 김구는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황해도에서 선봉장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이후 의병 활동에 가담하여 1896년 3월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 스츠다를 처단하여 투옥되었다. 그러다 1898년 3월 탈옥하여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다니며 은신하였고, 그해 가을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듬해 봄 마곡사를 떠났지만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약 1년여 동안 승려 생활을 했으며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김구와 마곡사의 인연은 1898년 늦가을 공주 갑사에서 ‘이 서방’이라는 공주 사람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인연으로 마곡사에서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승려 생활을 했다. 마곡사는 김구가 은신했던 곳이자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을 했던 바위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곳이다.
영문
Rock of Kim Gu's Ordination as a Buddhist Monk
2020
This rock is said to be the place where Kim Gu (1876-1949), a prominent lead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shaved his head to become a monk in 1898.
When, in October 1895, the queen Lady Min (1851-1895, known posthumously as Empress Myeongseong) was assassinated by the Japanese, the rage of the Korean people towards Japan reached its peak. In March of the following year, during his stay at an inn in Hwanghae-do Province, Kim Gu murdered a Japanese man named Tsuchida Josuke whom he presumed to be one of the Japanese soldiers that took part in the queen’s assassination. Three months later, Kim Gu was arrested and sent to the Incheon Prison where he was sentenced to death but managed to escape in 1898. After hiding out for some time in the areas of Chungcheong-do and Jeolla-do Provinces, he was ordained as a monk at Magoksa Temple and received his Buddhist name Wonjong. Kim Gu stayed at Magoksa Temple for six months and then left for Pyeongyang where he spent another year as a monk at Yeongcheonam Hermitage, after which he returned to secular life.
The wooden bridge built over Magokcheon Stream to this rock was named Baekbeomgyo, meaning “the bridge of Baekbeom,” which was Kim Gu’s pen name. A building where Kim Gu lived during his stay at the temple was located next to Eungjinjeon Hall. In 2004, it was rebuilt to serve as a museum dedicated to Kim and was named Baekbeomdang Hall. To the right of the house is a Chinese juniper tree planted by Kim during his visit to the temple in 1946.
2024
This rock is where Kim Gu (1876-1949), a prominent lead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was ordained as a Buddhist monk in 1898. In Korean, the rock is known as Sakbalbawi, or “Rock of the Shaved Head,” signifying the act of shaving one’s head upon becoming a monk.
Kim Gu joined the Eastern Learning (“Donghak”) Movement in 1893 and participated as a civilian army commander i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1894-1895) in Hwanghae-do Province. In March 1896, he murdered a Japanese man named Tsuchida Josuke in revenge for Japan’s assassination of the Korean queen in October 1895, leading to his arrest and imprisonment. After escaping from prison in March 1898, he traveled around Chungcheong-do and Jeolla-do Provinces while in hiding. In late autumn of that year, he met a man called Mr. Yi at Gapsa Temple in Gongju, and together they came to Magoksa Temple and became Buddhist monks. Kim Gu stayed at Magoksa Temple until the spring of 1899, before heading to Pyeongan-do Province to continue his practice as a monk. After spending roughly a year and a half as a monk, Kim Gu returned to secular life to fight for Korean independence.
영문 해설 내용
2020
삭발바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김구(1876-1949)가 1898년 출가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 곳이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1851-1895)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되자,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듬해 3월 김구는 황해도의 한 여관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일본군 스치다 조스케가 시해에 가담한 일본 군인이라 판단하여 살해하였다. 석달 후 체포된 김구는 인천형무소에 투옥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1898년 탈옥하였다.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다니며 은신하다가, 그 해 가을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6개월 동안 수행하였고, 이듬해 봄에 마곡사를 떠나 평양 영천암에서도 1년여 간 머물렀으나, 이후 환속하였다.
이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나무다리는 김구의 호를 따서 백범교라 이름 지었다. 마곡사 응진전 오른쪽에는 김구가 머물던 건물을 2004년에 다시 짓고 백범당이라 이름하였으며, 김구의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백범당 오른쪽에는 1946년 김구가 마곡사를 방문하여 심은 향나무가 있다.
2024
삭발바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김구(1876-1949)가 1898년 출가한 곳이다. 삭발바위라는 이름은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았던 곳이라는 데에서 붙여졌다.
김구는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황해도에서 선봉장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1895년 10월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1896년 3월 스치다 조스케라는 일본인을 처단하였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898년 3월 탈옥한 김구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다니며 은신하였고, 같은 해 늦가을 공주 갑사에서 이서방이라는 공주 사람을 만난 후 함께 마곡사에 와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김구는 1899년 봄까지 마곡사에서 머물다가 떠났고, 평안도에서 승려 생활을 했다. 1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 승려 생활을 한 후 환속하여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참고자료
- (사찰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32> 공주 마곡사, 작성자 박부영, 불교신문, 2019.09.26.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36
- -> 백범 선생이 출가했던 장소로 알려진 백범당은 원래 건물이 없었으나 역사 고증을 거쳐 2004년에 복원하여 조성했다. 선생의 진영(眞影)과 당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마곡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과 눈을 사로잡는다. / 마곡사는 선생이 서거하자 49재를 지냈으며 지금도 그의 서거일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다례재를 봉행한다.
- 마곡사 홈페이지 http://www.magoksa.or.kr/bbs/content.php?co_id=1040 -> 향나무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