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이치대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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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이치대첩지
Battlefield of Ichi Pass, Geumsan
대표명칭 금산 이치대첩지
영문명칭 Battlefield of Ichi Pass, Geumsan
한자 錦山 梨峙大捷址
주소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 79-34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2000년 9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전적지/임란전적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99,488㎡
웹사이트 금산 이치대첩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이치(梨峙)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산간 사이로 형성된 골짜기를 잇는 고갯길로 사용되었으며, 군사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를 휩쓸고 승승장구하던 2만여 병력의 일본군이 호남으로 나아가 군량미를 얻고자 이곳을 넘으려 하였다. 이때 먼저 길목을 지키고 있던 권율(權慄)장군이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同福縣監)과 1,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결사적으로 싸워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로써 전주성(전주성)과 호남평야를 지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의 첫 육전 승리를 장식한 이 싸움을 이치대첩 또는 이치싸움이라고 하며, 여기에 힘입어 이후 권율은 행주대첩과 웅치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영문

Battlefield of Ichi Pass, Geumsan

This battlefield is where Korean troops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Gwon Yul (1537-1599) achieved a decisive victor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Ichi Pass served as an important transportation point along the route over Daedunsan Mountain to Wanju. During the invasion, approximately 20,000 Japanese troops, having swept through Gyeongsang-do and Chungcheong-do Provinces, attempted to advance through Ichi Pass into Jeolla-do Province to secure rice supplies. General Gwon Yul, stationed at the pass, and local magistrate Hwang Jin (1550-1593) led some 1,500 troops in a valiant defense that resulted in victory, halting the Japanese advance.

The Battle of Ichi Pass was the first decisive land victory for Korean forc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and holds great significance for having protected Jeonjuseong Fortress and the Honam Plain. This victory also enabled Gwon Yul to achieve subsequent victories at Haengjusanseong Fortress (in present-day Goyang) and Ungchi Pass (connecting Wanju and Jinan).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권율(1537-1599) 장군이 일본군을 격퇴한 곳이다.

이치는 대둔산을 넘어 완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군사 전략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를 휩쓸고 승승장구하던 2만여 병력의 일본군은 이치를 넘어 전라도 지역으로 나아가 군량미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때 길목을 지키고 있던 권율은 동복(지금의 화순 지역) 현감인 황진(1550-1593)과 함께 1,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결사적으로 싸워 승리하였다.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중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였고, 이로써 전주성과 호남평야를 지킬 수 있었다. 또한 여기에 힘입어 이후 권율은 행주산성(지금의 고양 지역)과 웅치(완주와 진안 사이의 고개)에서의 전투 역시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