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신안사 극락전
| 신안사 극락전 |
|
| 대표명칭 | 신안사 극락전 |
|---|---|
| 한자 | 身安寺 極樂殿 |
|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신안사로 970 (제원면)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1985년 7월 19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신안사 |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신안사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신안사 극락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신안사는 금산군 제원면 동북쪽에 있는 신음산 자락에 있는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자장율사가 처음 지었다. 주변에 국사봉과 연신봉 등 여러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마치 연꽃이 만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연화 도량(蓮花 道場)이라고 부른다. 신안사라는 절의 이름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 재위)이 충북 영동군에 있는 영국사에서 공부하며 자주 들러서 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경순왕은 "천태산 국사봉을 배경으로 한 산과 물의 경치가 아름답고 조용하여 몸과 마음이 아울러 편안해지는 절"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신안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극락전이 지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41년(1765)과 헌종 11년(1845)에 각각 다시 지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건물의 앞쪽에 툇마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포식(多包式) 건축물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는 형태의 둥근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내4출목(內四出目)에, 외3출목(外三出目)이며, 바깥으로 나온 쇠서받침은 앙설형을 이루고 있고, 안으로는 운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은 앞면에 배치된 공포 상부와 내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배치한 2중량 7가연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정면에는 모두 4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았고, 내부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후면의 가운데 칸에는 내고주를 세워 부처를 모셔 놓은 불단과 불단 뒤쪽의 후불벽을 설치하였으며, 극락전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主存)으로 하여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영문
Geungnakjeon Hall of Sinansa Temple
Geungnakjeon Hall enshrines a Buddhist triad consisting of Amitabha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in the center flanked by the bodhisattvas Avalokitesvara and Mahasthamaprapta. The worship hall is presumed to have been founded in the latter half of the 17th century and rebuilt in 1765 and 1845. The building measures three bays in width by three bays in depth and features a gable roof with two-tier eaves. The building is characterized by its platform made of undressed stones and its convex wooden pillars, which bow outward in the middle. The weight of the roof is supported by wooden brackets installed atop the pillars and lintels. The hall’s interior wooden floor features a characteristic Korean parquet pattern.
Sinansa Temple, located at the foot of Sineumsan Mountain, was established in 651 by Monk Jajang. The temple’s name, meaning “Temple of Bodily Ease,” is said to have originated from the words of King Gyeongsun (r. 927-935), the last ruler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who described the temple’s scenery as having such a tranquil beauty that it put one’s mind and body at ease. The temple is also known as the Lotus Temple due to the several mountain peaks coming together like the petals of a lotus flower in full bloom. Once a large temple housing about 3000 monks with many stately buildings and statues, Sinansa was mostly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Only Daegwangjeon and Geungnakjeon Hall remain.
영문 해설 내용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765년과 1845년에 각각 다시 지어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자연석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는 형태이다. 지붕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와 사이에 공포를 설치했다. 내부에는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았다.
신음산 자락에 자리한 신안사는 651년에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다. 신안사라는 이름은 “몸이 편안한 사찰”이라는 뜻으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이 “산과 물의 경치가 아름답고 조용하여 몸과 마음이 아울러 편안해지는 절이다”라고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여러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마치 연꽃이 만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연화 도량(蓮花 道場)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신안사는 3,0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하던 대규모 사찰로,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많았으며 10여 기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과 불상이 소실되었다. 지금은 대광전과 극락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