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
| 금릉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 Rock-carved Pensive Bodhisattva in Eungi-ri, Geumne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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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의 유형문화재 김천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 네이버 여행인플루언서 투어 디자이너, 여행을 디자인하다, 2021.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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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금릉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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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Rock-carved Pensive Bodhisattva in Eungi-ri, Geumneung |
| 한자 | 金陵 銀基里 磨崖半跏普薩像 |
|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은기리 산22번지 |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1990년 8월 7일 |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보살상 |
| 수량/면적 | 1구 |
| 웹사이트 | 금릉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금릉 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은 김천시 어모면 은기리 은석마을에 있는 2.9m 높이의 보살상이다. 폭 8m, 높이 4m 정도의 자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 보살상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 자세이다.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오른발을 연꽃 위에 얹고 있다. 머리에는 삼산관*을 썼으며,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두껍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향하게 하여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여 왼쪽 무릎 위에 놓았다.
이 보살상은 통일 신라 시대의 반가 사유상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머리에 쓴 삼산관의 양식과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반가(半跏): 부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 대좌(臺座): 불상을 올려놓는 대. 상현좌, 생령좌, 연화좌 따위가 있다.
- 삼산관(三山冠): 세 개의 산을 반원 모양으로 형상화하여 만든 관.
영문
Rock-carved Pensive Bodhisattva in Eungi-ri, Geumneung
This rock-carved pensive bodhisattva in Eunseok Village is presumed to date back to the early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 image, which measures 2.9 m in height, is depicted on a rock face measuring about 8 m in width by 4 m in height.
The pensive bodhisattva sits on a lotus pedestal, with his right foot place on his left knee. He wears a headdress with three peaks and a deeply carved robe over his left shoulder. He rests his right hand palm down on his right knee and his left hand palm up on his left knee. Although the image generally follows the pensive form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76-935), the style of three peak headdress and roughly expressed garments are characteristic of the early Goryeo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은기리 은석마을에 있는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폭 8m, 높이 4m 정도의 자연 암벽에 2.9m 높이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이 보살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삼산관을 썼으며,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두껍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향하게 하여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여 왼쪽 무릎 위에 놓았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반가사유상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삼산관의 양식과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은 고려 초기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