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산정
균산정 Gyunsanjeong Pavil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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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균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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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yunsanjeong Pavilion |
한자 | 筠山亭 |
지정(등록) 종목 | 북구 향토문화유산 제2호 |
해설문
국문
정자는 자연 경관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주변 경치가 좋은 곳에 아담하게 지은 집이다.
균산정은 청풍동 신촌마을 초입인 석곡천 옆 비암술산 아래에 있다. 대나무가 병풍처럼 정자를 감싸 안고 앞쪽은 낮은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주변의 노암괴석과 석곡천의 맑은 물이 어울려 경관이 뛰어나다.
이 정자는 청풍동 출신 학자였던 문인환(文仁煥, 1863~1930)이 부친인 문용현(文龍鉉, 1837~1886)의 뜻를 받들어 건립한 정자이다. 1921년 건립한 정자로, 부친의 호를 따라 ‘균산정’이라 하였다.
문용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노사 기정진의 제자로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다. 기정진 사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면서 후학을 가르친 인물로, ‘균산(筠山)’은 ‘살갗을 에는 듯한 눈보라에도 변치 않은 대나무’ 같은 문용현의 기개를 표현한 것이다.
정자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네모진 형태로, 건물 중앙에 작은 방을 둔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 정자이다. 방 위쪽으로는 작은 다락이 있고, 네 면에는 마루가 설치되었다. 1937년 지붕을 보수하였고 2001년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균산정은 후학 교육에 힘썼던 문용현의 학문정신이 서려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무등산 일대에 건축되었던 누정의 계보를 잇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향토문화적 가치가 있다.
영문
Gyunsanjeong Pavilion
This pavilion located at the entrance to Sinchon Village in Cheongpung-dong was established in 1921 by the local scholar Mun In-hwan (1863-1930) to continue the legacy of his late father Mun Yong-hyeon (1837-1886) of the Nampyeong Mun clan.
As a disciple of the great Confucian scholar Gi Jeong-jin (1798-1879), Mun Yong-hyeon displayed excellent academic achievements and character. He stayed in his hometown in Cheongpung-dong where he engaged in scholarly pursuits and taught students.
This pavilion was named after Mun Yong-hyeon’s pen name, Gyunsan, meaning “bamboo mountain.” This symbolizes his fortitude, which resembles a bamboo that does not change even in the middle of winter.
The pavilion was repaired in 1937 and renovated in 2001 by Mun’s descendants. The building has a room in the center with wooden verandas on all sides. The pavilion is surrounded by bamboos as if to create a folding screen painting. In front of the pavilion is a low, stone wall with a gate. Next to the pavilion is Seokgokcheon Stream, which flows through the village.
영문 해설 내용
청풍동 신촌마을 입구에 위치한 균산정은 청풍동 출신 학자였던 문인환(1863-1930)이 부친인 문용현(1837-1886)의 뜻을 받들어 1921년에 건립하였다.
문용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기정진(1798~1879)의 제자로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다. 그는 고향인 청풍동에 머물며 학문을 연마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균산정이라는 이름은 문용현의 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균산’은 ‘대나무 산’이라는 뜻으로, 문용현의 기개가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대나무와 같음을 나타낸다.
정자는 1937년 보수하였고 2001년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건물 중앙에 작은 방을 두었으며, 사방에는 마루가 있다. 주위에는 대나무가 병풍처럼 정자를 감싸고 있고, 정자 앞쪽에는 대문이 딸린 낮은 돌담이 둘러있다. 주변에는 마을을 따라 흐르는 석곡천이 있다.
참고
- 남평문씨 대종회 홈페이지에 의해 중수에 대한 연도 확인. http://www.m-oo-n.com/sajeok/29gyunsanjeong.htm
- 그러나 여기는 아버지 문용헌이 세웠다고 함. 시기가 안 맞아서 정보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음. 그리고 원래 이 자리에 조상이 세운 건물이 있었다고 함.
- 1992년도의 모습 http://gjarchive.kr/p_view/32761
- http://gjsgcc.or.kr/ko/26/view?SEQ=2410&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