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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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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장군묘
대표명칭 권율장군묘
한자 權慄將軍墓
주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 (석현리)
지정(등록) 종목 경기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72년 5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권율 장군 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충장공(忠莊公)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권율(權慄,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장군의 호는 만취당, 본관은 안동이며 조선 중종 32년(1537)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장군은 선조15년(1582)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호조정랑 등을 거쳐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임진왜란(1592~1598) 중에는 전라좌도 도절제사로 임명되어 1천여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충청도 금산의 이치(배티고개)에서 전주로 진격하는 1만여 왜군을 대파하였고, 그 공로로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하였다. 이어 군사 만명을 인솔하여 수원 독산성에 진을 치고 왜군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이듬해 1593년 2월에는 서울을 회복하려고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2,800명의 군사로 3만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첩을 올렸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다.

대첩 후 장군은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都元帥)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영의정으로 관직을 높였고, 선조 37년(1604)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봉하고, 충장의 시호를 내렸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창녕조씨와 후(後)부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묘역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철종 12년(1861)에 장군의 후손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