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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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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영문명칭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한자 軍威 麟角寺 普覺國師塔 및 碑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지정번호 보물 제428호
지정일 1965년 9월 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보각 국사 탑과 비는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보각 국사 일연이 입적한 후 세운 사리탑과 그의 평생 발자취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비이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룬 승려인데, 노년에 인각사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지극히 받들어 모셨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침에 해가 뜰 때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의 어머니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돌 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았는데 윗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 받침돌 역시 8각으로, 동물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위받침돌은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의 몸돌은 8각으로 앞쪽에 ‘보각국사정조지탑’이란 탑 이름이 있고, 뒤쪽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菩薩像)을 새겼다. 지붕돌은 두꺼운 추녀 밑을 위로 살짝 올리고, 경사는 급한 편이며 지붕 추녀 끝에는 꽃장식이 있다. 지붕돌 위에는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올라 있다.

탑의 건립 연대는 일연 스님이 입적한 1289년에서 비를 세운 1295년 사이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마을 뒷산에 위치하는 이른바 부도골[浮屠谷]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1962년에 인각사 마당으로 옮겼다.

보각 국사 비는 충렬왕 21년(1295)에 세웠다. 비문의 앞면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스승인 일연의 발자취와 추모의 정을 담았다. 뒷면은 비를 세우게 된 과정과 제자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비문의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문헌에서 찾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비는 크게 훼손되어 비문을 읽는 것이 어려우나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남아 있다. 근래 탁본 전체가 발견되었다.

영문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These are the stupa and stele of the Buddhist monk Iryeon (1206-289), also known as State Preceptor Bogak. A stupa is a structure built to enshrine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A stele recording the monk's life and achievements was commonly erected together with the stupa.

Iryeon was ordained as a monk at Jinjeonsa Temple on Seoraksan Mountain in 1219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n 1227, he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for the Buddhist monks. During his life, he visited many temples and devotedly followed the teachings of the Buddha. In 1283, when he was staying at Gwangmyeongsa Temple in the capital city Gaegyeong (present-day Gaeseong, North Korea),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state preceptor. The following year, he became the head monk of Ingaksa Temple. During his stay at Ingaksa Temple, he compiled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It is an extensive chronological record that contains legends, poems, and historical accounts relating to the three ancient Korean kingdoms of Goguryeo, Baekje, and Silla. It is one of the major sources of historical data about those kingdoms. After his death, Iryeon was given the posthumous title Bogak, meaning “universal enlightenment.”

The stupa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sometime between 1289 and 1295, which are, respectively, the years of Iryeon’s death and the construction of his stele. The stupa was originally located to the east outside of the temple but was moved inside in 1962. It consists of a square platform, a three-tiered base, octagonal body and roof stones, and a decorative top. The body stone features on one of its sides an inscription that reads “Stupa of State Preceptor Bogak,” while the opposite side is decorated with a door engraving, which symbolically indicates that the stupa contains relics. The other six sides of the body stone are engraved with depictions of the Guardian Kings and two bodhisattvas.

The original stupa erected in 1295 is located inside a pavilion behind Guksajeon Hall. Although it was severely damag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text of the stele was preserved on several rubbed copies made prior to the damage.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side of the stele was ordered by the king and composed by the famous writer Min Ji (1248-1326). It describes the life of Iryeon and lists his written works. The inscription on the back side of the stele records the process of its preparation and the names of Iryeon’s students. The inscription was calligraphed based on the handwriting of the well-known Chinese calligrapher Wang Xizhi (303-361). In 2006, a reproduction of the stele was erected in the eastern part of th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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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1206-1289)의 승탑과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스님의 사후에 승탑과 탑비가 함께 조성된다.

일연은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으며, 1227년 승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에 정진하였고, 개경의 광명사에 머물고 있던 1283년 국사로 책봉되었으며, 이듬해 인각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는 인각사에 머무는 동안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 신화, 전설 등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입적 후 '보각(Universal Enlightenment)'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승탑은 그가 입적한 1289년에서 탑비를 세운 1295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인각사 동쪽에 있었던 것을 1962년 인각사 경내로 옮겼다. 사각형의 바닥돌, 3단의 받침돌, 팔각형의 몸돌,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 중 한 면에 ‘보각국사의 승탑’이라는 뜻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면에는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상징하는 문 모양을 새겼다. 나머지 여섯 면에는 사천왕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을 새겼다.

1295년에 세워진 원래의 탑비는 현재 국사전 뒤편의 비각 안에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으나, 오대산 월정사 등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사본을 토대로 비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앞면의 비문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민지(1248-1326)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일연의 생애를 기술하고 그가 남긴 저술을 나열하였다. 뒷면의 비문은 탑비를 세운 과정과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비문의 글씨는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문헌에서 찾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2006년 사찰 동쪽에 새로 재현한 탑비를 세웠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