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통영청년단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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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통영청년단 회관
Former Tongyeong Youth Center
구 통영청년단 회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구 통영청년단 회관
영문명칭 Former Tongyeong Youth Center
한자 舊 統營靑年團 會館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서문로 21 (문화동)
지정(등록)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제36호
지정(등록)일 2002년 5월 31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문화집회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동 연면적 396.7㎡
웹사이트 구 통영청년단 회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옛 통영청년단 회관은 3.1 독립운동 직후 통영의 청년들이 민족의식의 고취와 사회 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통영청년단을 결성하고, 지역민들의 성금을 모아 1923년에 세운 회관이다.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서, 정면 가운데에 현관이 있는 좌우 대칭형이며, 수직창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실용적이고 장식이 억제된 근대 기능주의 건축 성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탄압에도 꿋꿋하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온 통영 청년들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영문

Former Tongyeong Youth Center

This building was constructed in 1923 as the meeting hall of the Tongyeong Youth Association. The Tongyeong Youth Association was formed soon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to cultivate the local Korean youth’s ethnic awareness and promote social enlighten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two-story red brick building features a protruding entrance in the center and tall, narrow windows arranged symmetrically. The building is an example of the early 20th century architectural functionalism, which prioritized purpose over form and refrained from unnecessary ornamentation.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1923년 통영청년단 회관으로 세워졌다. 통영청년단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3.1운동 직후 통영 지역의 청년들이 민족의식를 고취하고 사회 계몽운동을 펴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의 정면 가운데에 돌출된 현관이 있고, 건물 전체 면에는 수직창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실용적이고 장식이 억제된 20세기 초 기능주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참고자료

  • 구 통영청년단 회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800360000&pageNo=1_1_1_1
  • 구 통영청년단 회관 기록화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4. -> 1980년 개보수 공사 때에 콘크리트 평슬라브 캐노피로 변경되었고 출입문도 방풍실을 가진 이중 강화유리문으로 교체되어 있다. 그 외 건물의 우측 편에도 박공형의 캐노피를 가진 부출입문을 두었고 후면으로 통하는 2개의 문에는 별도의 처마가 없었다. / 이 건물은 1931년까지 애국지사들의 활동하다가 일제의 압력과 회유로 광복이전까지 청년동맹, 소년동맹, 안우회, 용화회 등 어용단체의 공간으로 변절되었다. 광복 직전에는 통영세무서와 동부유치원으로 사용되어 왔다. 광복이후에는 통영여학교, 충무고등공민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 통영문화원 등 지역사회 문화와 교육 등의 목적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 통영 사람들의 3.1운동과 저항-구 통영청년단 회관,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796->통영청년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통영 청년들이 운동의 정신을 발전시켜 독립을 성취하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애국계몽 운동과 문맹퇴치 운동 등에 힘쓴 통영청년단은 1920년부터 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지를 희사 받고, 지역 유지들이 출연을 약속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공사는 중단되기 일쑤였다. 통영청년단은 ‘활동사진대’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며 영화를 상영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5대 단장(임철규)이 사재를 털고 거액을 대출받음으로써 회관 건물은 착공 3년 반 만인 1923년 완성되었다. 통영청년단은 1931년 강제 해산 당했고, 회관은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 되었다. 일본의 관변 단체들이 사용하던 회관은 해방 후 임철규 씨가 통영읍에 기부했다. 해방 후 잠시 통영여자중학교가 사용하던 시절에는 유치환, 윤이상 등이 교사로서 이 건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0년부터 충무고등공민학교가 통영 사람들의 저항 정신이 깃든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 최근까지 통영문화원이 이 건물 1층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