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대전형무소 우물
구 대전형무소 우물 Well of Former Daejeon Pri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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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구 대전형무소 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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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ell of Former Daejeon Prison |
한자 | 舊 大田刑務所 우물 |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중촌동) |
지정(등록) 종목 | 대전광역시 시도등록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2022년 06월 25일 |
분류 | 등록문화유산 / 기타 / 기타 시설물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기 / (우물)2.99㎡ (보호각)14.82㎡ |
웹사이트 | 구 대전형무소 우물,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대전형무소는 조선총독부령 제86호에 따라 1919년 5월에 ‘대전감옥소’라는 이름으로 개소하였다. 1919년 삼일 운동으로 급증한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해 원래 계획보다 서둘러 조성하였다. 1923년에 대전형무소로 개편된 뒤 안창호와 여운형 등 중요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광복 후에는 한국 전쟁 때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의 현장이 되었으며, 군부 독재 시기에 활동한 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이 우물은 일제 강점기 대전형무소 안에 설치된 4기의 우물 중 하나로 취사장 부근에 있던 것이다. 지름 2m, 깊이는 약 11m이며, 65㎝의 높이의 둥근 시멘트 벽을 쌓았다. 또 빗물이나 낙엽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벽돌로 된 맞배지붕 모양의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보호각의 높이는 4.6m이고 바닥은 가로세로 3.8m인 정사각형이다. 박공에는 통풍창을 설치했으며, 천장 아래의 목부재에는 도르래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1984년에 대전형무소가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형무소 부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고, 일부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이 우물은 시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망루’와 함께 대전형무소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으로 중요한 보존 가치를 지닌다. 2018년도 공원 정비사업 과정에서 우물 주변에서 형무소 담장과 취사장 바닥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영문
Well of Former Daejeon Prison
This well is one of four wells built inside the Daejeon P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long with the watchtower located behind the nearby Daejeon Immigration Office, it is one of the few remaining traces of the former prison site. Measuring 2 m in diameter, about 11 m in depth, and featuring a 65 cm-tall cement headwall, the round well is protected from rain, fallen leaves, and other debris by a gable-roofed brick pavilion. The pavilion, which measures 4.6 m in height and 3.8 m in width, has ventilation windows installed in its gables. The remains of a pulley mechanism can also be seen on the wooden parts of the ceiling.
Daejeon Prison opened in May 1919 to accommodate the rapidly increasing number of political prisoners apprehended following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Major independence activists and political leaders, including Ahn Chang-ho (1878-1938) and Yeo Un-hyeong (1886-1947), were imprisoned here. During the Korean War, the prison became the venue of civilian massacres committed by South and North Korean soldiers in July and September 1950, respectively. In the 1960s to 1980s, many pro-democracy activists were also imprisoned here. After the prison was relocated to Daejeong-dong, Yuseong-gu, in 1984, the site was transformed into an apartment complex and park. In 2018, structural remains were discovered in the vicinity of the well during park maintenance works. Based on a subsequent archaeological survey, the remains are presumed to belong to the prison’s wall and kitchen floor.
영문 해설 내용
이 우물은 일제강점기 대전형무소 안에 설치되었던 4기의 우물 중 하나이다. 대전출입국외국인사무소 뒤에 있는 망루와 함께 대전형무소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이다. 지름 2m, 깊이 약 11m, 65㎝의 높이의 둥근 시멘트 벽을 쌓았으며, 빗물이나 낙엽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벽돌로 된 맞배지붕 모양의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보호각의 높이는 4.6m이고 바닥은 가로세로 3.8m이며, 박공에는 통풍창을 설치했다. 천장 아래의 목부재에는 도르래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전형무소는 삼일 운동으로 급증한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해 1919년 5월에 개소하였다. 안창호(1878-1938)와 여운형(1886-1947) 등 주요 독립운동가와 정치적 지도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7월과 9월에는 각각 남한과 북한의 군인이 형무소에 수감된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1984년 대전형무소가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형무소 부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고, 일부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2018년도 공원 정비사업 과정에서 우물 주변에서 형무소 담장과 취사장 바닥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