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 백정기 의사 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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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백정기의사고택지
Baek Jeong-gi’s House
구파 백정기 의사 고택지, 정읍관광, 정읍시.
대표명칭 구파백정기의사고택지
영문명칭 Baek Jeong-gi’s House
한자 鷗波白貞基義士古宅址
주소 전북 정읍시 영원면 갈선1길 17-13 (은선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03호
지정(등록)일 1999년 11월 19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구파 백정기 의사 고택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구파 백정기 의사 고택지는 항일 독립투사인 백정기(1896~1934) 의사가 어렸을 적 살았던 곳이다. 백정기 의사는 1896년 부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12년 동안 거주하다가 독립운동을 하고자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백정기 의사는 기미독립운동에 참여한 후에도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결국 붙잡혔다. 그는 일본의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34년 지병이 악화되어 순국하였다. 1946년 일본에서 유해를 송환받아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 한참 후인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영문

Baek Jeong-gi’s House

This was the site of the childhood home of Baek Jeong-gi (1896-1934), an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1945). The current building was built in 2004.

Born in Buan, Baek's family moved into this house in 1907. In 1919, he went to Seoul to participate in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to initiate a military protest against the colonial government in the area. He went on to participate in independence activities in cities in China and Japan. In 1933 in Shanghai, he plotted the murder of a group of Japanese officials, but this plan was revealed, and Baek was arrested. In 1934, Baek died of illness while in prison in Nagasaki. In 1946, his body was returned to Korea and buried in Hyochang Park in Seoul. In 1963, he was posthumously awarded South Korea's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The original thatched-roof house had collapsed, and so a cement building was built to replace it in 1975. However, in 2004, when the Baek Jeong-gi Memorial Hall was established, this cement house was torn down, and a new thatched-roof house more similar to the original house was built.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독립운동가인 백정기(1896-1934)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200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백정기는 부안 출신으로, 1907년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을 목격한 뒤, 고향에 돌아와 무장항쟁을 주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일본과 중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상하이에서 일본 공사 등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일본의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1934년 지병이 악화되어 순국하였다. 1946년 유해가 송환되어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원래 있던 초가집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1975년 경에 세운 시멘트 건물이 있었다. 2004년 백정기의사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시멘트 건물을 철거하고 원래의 집과 유사한 형태의 초가집을 다시 지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