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죽장리 이정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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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죽장리 이정표석
Stone Post of Jukjang-ri, Gumi
구미 죽장리 이정표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구미 죽장리 이정표석
영문명칭 Stone Post of Jukjang-ri, Gumi
한자 龜尾 竹杖里 里程標石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1163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22년 9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도로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구미 죽장리 이정표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이정표석은 두 지점 사이 길의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세우는 도로 표지석을 뜻한다. 구미 죽장리 이정표석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에서 상주에서 선산부로 이어지는 선산부 서쪽 관도**에 세운 이정표석이다.

표석은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앞면은 평평하게 다듬어 “부치서십리 방명고방송(府治西十里 坊名古方松, 선산도호부 읍치에서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있으며 마을 이름은 ‘고방송(古方松)’이다)”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뒷면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 상태이며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의 외방 도로 표지 법제에 따르면 10리마다 소후****를 세워 마을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는데, 죽장리 이정표석은 이러한 법전 형식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이정표석을 세운 때는 『경국대전』을 펴낸 1485년 이후부터 『호구총수』를 펴낸 1789년경 사이 어느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 1415년부터 1894년까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 선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기관.
  • 관도(官道): 예전에 나라에서 관리하던 주요 도로.
  •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시대 최초의 법전.
  • 소후(小堠): 조선시대 지방 도로의 10리마다 세웠던 작은 이정표.

영문

Stone Post of Jukjang-ri, Gumi

This granite post was erected presumably sometime between 1485 and 1789 to mark the distance along the road between Sangju and Seonsan (today’s Gumi area).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stone posts such as this one were erected every 10 ri (about 4 km) along a road and were inscribed with the name of the nearby village. This post is no exception.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of the post reads, "[This post] stands 10 ri to the west of the walled town of the Seonsan-dohobu Government Office and the village’s name is Gobangsong," referring to Gobangsil Village within Jukjang-ri. The back of the stone was left unhewn without an inscription. The Seonsan-dohobu Government Office, which would have been responsible for the installation of this post, served as the center of local administration from 1415 to 1894.

영문 해설 내용

이 화강암 표석은 상주와 선산(지금의 구미 지역) 사이 길의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1485년과 1789년 사이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지방 도로의 10리마다 작은 이정표를 세워 인근 마을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 이 이정표석 역시 이러한 형식을 지키고 있다. 표석 앞면에는 “선산도호부 읍치에서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있으며 마을 이름은 ‘고방송(古方松)’이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고방송은 죽장리 고방실마을을 가리킨다. 뒷면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 상태이며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이 이정표석을 세운 선산도호부는 1415년부터 1894년까지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