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각황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Gakhwa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Gur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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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구례 화엄사 각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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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akhwa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Gurye |
한자 | 求禮 華嚴寺 覺皇殿 |
주소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
지정(등록) 종목 | 국보 제67호 |
지정(등록)일 | 1962년 12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구례 화엄사 각황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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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원래 각황전 터에는 2층 4면 7칸 사방벽에 화엄석경이 새겨져 있던 장육전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계파선사께서 장육전 중창 백일기도 99일째 꿈에 물과 밀가루가 들어있는 두 개의 항아리에 손을 담가 손에 묻지 않는 자가 화주승 이라고 하여 백일기도 회향날 공양주 스님이 10년간의 화주승으로 뽑혔다. 그 후 공양주 스님이 대웅전 기도중 문수보살님 말씀에 첫 번째 만나는 자가 시주자 라고 하였는데, 새벽 일찍 걸망 메고 산문을 나섰는데 산사에서 잔심부름하는 거지 노파 시주자를 만났다. 하지만 노파는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며 화엄사 향해 합장하고 다음생에는 왕궁에 태어나길 기원하고 소(沼)에 몸을 던져 헌신공양(獻身供養)을 하였고, 6년 뒤 한양성에서 손을 못피는 숙종의 공주가 공양주 스님과 만나 손이 펴졌는데 손바닥에 장육전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시주 노파가 공주로 환생하였음을 알게되었다. 이에 숙종은 그 원력에 감탄하여 장육전 중건 불사를 지시한다. 이때 영조(英祖)의 모친(母親)이며 후궁(後宮)인 숙빈최씨(淑嬪崔氏)도 동참(同參)하여 숙종 25년(1699년)에 시작하여 숙종 28년(1702년)에 완공하였다. 장육전은 2층 70칸으로서 그 장엄함은 비길 데 없었으며, 연잉군(영조)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1703년에는 삼존불(三尊佛), 사보살상(四菩薩像)을 완성하여 일주일에 걸쳐 경찬대법회(慶讚大法會)를 열었으며 장육전 중건 불사를 회향하자 조정에서는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하였다. 아후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승격 되었다.
각황전의 각황은 부처님을 깨달은 왕(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문
Gakhwa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Gurye
Gakhwangjeon Hall is one of the two main buildings in Hwaeomsa Temple, along with Daeungjeon Hall.
It is said that originally there was a Buddhist worship hall here built by the eminent monk Uisang (625-702)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The inside walls of this building were decorated with green stone plates that had the Avatamsaka Sutra engraved on them. However, the old building and the sutra were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Fragments of the stone sutra are currently displayed in the temple's museum.
The construction of Gakhwangjeon Hall took place from 1699 to 1702, and a seated buddha triad and four standing bodhisattvas were enshrined in the hall in 1703. The buddha triad is composed of Sakyamuni Buddha in the center with Amitabha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and Prabhutaratna (Buddha of Abundant Treasure) to his left and right, respectively.
This large-scale project to build Gakhwangjeon Hall was made possible thanks to the extensive support from the royal court.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construction of the hall was financed in the name of Prince Yeoning (b. 1694, later King Yeongjo, r. 1724-1776), the son of King Sukjong (r. 1674-1720) and his concubine Lady Choe (1670-1718). An enormous amount of money and manpower were invest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hall to wish for a bright future for the young prince. When the hall was ready, King Sukjong personally bestowed its name, Gakhwangjeon.
The name can be read in two ways: "The place where the enlightened king (the Buddha) resides” or “The place that enlightens the king (Sukjong).” The plaque with the name of the hall was calligraphed by the well-known calligrapher Yi Jin-hyu (1657-1710).
영문 해설 내용
각황전은 대웅전과 더불어 화엄사의 중심 건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신라시대의 승려인 의상(625-702)이 세운 전각이 있었고, 푸른색의 돌판에 『화엄경』을 새겨 내부의 벽면을 장식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경전을 새겼던 석벽의 조각들은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각황전은 1699년에 짓기 시작하여 1702년에 완성하였고, 삼존불 좌상과 네 보살의 입상이 1703년에 봉안되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부처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아미타불과 다보불이 있다.
각황전과 같은 대규모의 불전이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공사는 숙종(재위 1674-1720)의 후궁인 숙빈최씨(1670-1718)와 아들인 연잉군(후의 영조, 1694-1776, 재위 1724-1776)의 지원 아래 이루어졌고, 연잉군의 앞날을 축원하기 위해 엄청난 물력과 인원이 투입되었다. 또한 전각이 완공되자 숙종은 친히 전각의 이름을 지어 하사했다.
‘각황전’이라는 이름은 ‘깨달은 왕(부처)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왕(숙종)을 깨우치게 한 곳’이라는 뜻도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었던 이진휴(1657-1710)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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