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대군파 묘역 세장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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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평대군파 묘역 세장기 비
Monument of the Cemetery of the Prince Gwangpyeong Branch of the Jeonju Yi Clan
"광주치서 광수산이씨 세장기비",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광평대군파 묘역 세장기 비
영문명칭 Monument of the Cemetery of the Prince Gwangpyeong Branch of the Jeonju Yi Clan
한자 廣平大君派 墓域 世葬記 碑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 문화재 현상변경 심의 결과, "광주치서 광수산 이씨 세장기비"에서 "광평대군파 묘역 세장기 비"로 변경됨. (2020.07.)


해설문

국문

기존 국문

광주치서 광수산 이씨 세장기비

이 비는 조선 숙종 때인 1695년에 광평대군 10대손인 이유 녹천상공(李濡 鹿川相公)께서 평안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 세웠다.

광평대군의 묘를 이곳 광수산으로 옮긴 것은 1495년이며, 이후 200년간 약 10대에 걸쳐 자손들의 묘소가 그 주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자취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여, 186기에 달하는 묘소의 방향과 거리를 기슭에 따라 구별하고 기록하여 대군의 묘 아래에 비를 세운 것이다.

이 비를 세운 목적은 후손들에게 묘소의 위치를 알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깊게 다지며 집안의 묘를 대대로 한 곳에 조성하여 높이 기리게 하는 ‘세장’의 정신으로 종친 간의 화목을 돈독히 하려는 것이다.

비석에 새긴 글은 광대한 종중 묘역의 면모를 알려주는 오래되고 귀중한 유물이며,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매우 가치가 높은 금석문이다.


  • 광주치서 : 옛 광주 고을의 서쪽을 뜻한다.

수정 국문

광평대군파 묘역 세장기 비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의 묘소 위치를 기록한 비석이다. 광평대군 묘소는 조선 연산군 원년(1495) 현재 자리에 이장되었다. 이후 주변으로 후손들의 묘소 조성이 지속되어 숙종 21년(1695)에는 186기의 묘소가 모여 있는 가문 묘역이 되었다.

후손이자 평안도 관찰사였던 녹천 이유*는 각 묘소의 위치가 잊혀질 것을 우려하여 세장지*에 비석을 세워 각 묘소의 위치를 기록하였다. 세장기 비는 광평대군 묘를 중심으로, 각 묘소의 방향과 거리를 기록하여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왕실의 종친*과 양반가문들이 대규모 세장지를 마련하여 조상을 숭배하고, 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강화함으로써 친척간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였다. 종중 묘역의 규모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세장기 비를 세운 묘역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 녹천(鹿川) 이유(李濡,1645~1721) : 조선 숙종 때 병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두루 거치신 분으로 광평대군 10대손임
  • 세장지(世葬地) : 대대로 묘를 쓰는 땅
  • 종친(宗親) : 임금의 부계 친척

영문

  • 변경 전 : Monument of the Yi Family Cemetery on Gwangsusan Mountain
  • 변경 후 : Monument of the Cemetery of the Prince Gwangpyeong Branch of the Jeonju Yi Clan

This monument, erected in 1695, records the location and orientation of 186 tombs at the cemetery of Prince Gwangpyeong’s branch of the Jeonju Yi clan.

Prince Gwangpyeong (1425-1444) was the fifth son of King Sejong (r. 1418-1450)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is tomb was originally located near today’s Seolleung Royal Tomb, but was moved southeast to its current location on Gwangsusan Mountain in 1495. For the next 200 years, nearly ten generations of Prince Gwangpyeong’s descendants were buried in this area, making it difficult to discern individual tombs. Yi Yu (1645-1721), one of the prince’s descendants, erected this monument to record the position of each tomb, as well as the direction and distance from the tomb of Prince Gwangpyeong.

During the Joseon period, royal relatives and prestigious families built large-scale family cemeteries in order to deepen their respect for their ancestors and promote harmonious relations among kin. Thus, the information recorded on this monument is a valuable resourc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construction of a family cemetery.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있는 묘소 186기의 위치와 방향을 기록해서 1695년에 세운 것이다.

광평대군(1425-1444)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그의 묘는 원래 지금의 선릉 부근에 있었는데 1495년에 현재 위치인 광수산으로 옮겼다. 이후 200년간 약 10대에 걸쳐 자손들의 묘소가 그 주변에 자리잡게 되면서, 그 위치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광평대군의 후손인 이유(1645-1721)가 이 비석을 세워 각 묘소의 위치와 광평대군 묘에서의 방향 및 거리를 기록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의 종친과 양반 가문들이 대규모 세장지를 마련하여, 조상을 숭배하고 친척간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였다. 이 비석에 남아 있는 기록은 당시의 세장지 조성 문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