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Three-story Stone Pagoda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Gwang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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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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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hree-story Stone Pagoda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Gwangyang |
한자 | 光陽 中興山城 三層石塔 |
주소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중흥로 263-100 (운평리)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제112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광양시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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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중흥사(中興寺)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불타버렸다고 한다. 탑은 원래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각 기단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아래층 기단은 중앙에 3개의 기둥을 새겨 둘로 나누었다.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 뒷면에는 공양상(供養像) 등을 돋을새김 기법으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탑신부 1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있는 여래상을 조각했는데, 이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쪽의 여래상만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기단부와 탑신부를 조각상으로 장식하는 양식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등장한 요소이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석탑의 존재는 통일신라시대의 광양지역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영문
Three-story Stone Pagoda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Gwangyang
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9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is fortress is said to have been the site of a Buddhist temple named Jungheungsa that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by State Preceptor Doseon (827-898) and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n front of the pagoda, there was originally a stone lantern depicting twin lions (National Treasure), but it is currently kept at the Gwangju National Museum.
The pagoda consists of a two-tier base and three sets of body and roof stones. The corners and sides of the base are carved to look like pillars, as are the corners of the body stones. The upper tier of the base features carvings of wrathful guardians, ritual offerings, and the Four Guardian Kings between the carvings of pillars. Each side of the first-story body stone features a carving of the Buddha seated on a lotus-shaped pedestal to symbolize that the Buddha is present everywhere and in all directions. Only the Buddha to the north is standing, while the rest are seated. This type of architectural style where the base and the body stones of the pagoda are decorated with engravings emerged beginning in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The undersides of the roof stones are carved into three tiers.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흥산성에는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중흥사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탑은 원래 쌍사자 석등(국보)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각 기단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위층 기단에는 중앙에 기둥을 새기고 그 양옆에 인왕상, 공양상, 사천왕상 등을 조각했다. 1층 몸돌 각 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있는 여래상을 조각했는데, 이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쪽의 여래상만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탑의 기단과 몸돌을 조각상으로 장식하는 양식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등장한 요소이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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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 | Actor |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 | 중흥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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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_중흥사_쌍사자_석등 | Heritage | A00-0103-0000 | 원본이 국보 103호로 지정되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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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_중흥산성 | Heritage | J36-0178-0000 |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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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참고자료
-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601120000 → 중흥산성 서쪽 시냇가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대사가 창건한 중흥사(中興寺)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끝에 승병들은 모두 죽고 절은 불에 타버렸다고 전한다. 이 탑은 원래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석탑만이 남아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위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을 굵직하게 조각하였다. 한 면을 둘씩 나누어서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뒷면에는 보살상(菩薩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 몸돌에는 두꺼운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여래상(如來像)을 조각하였고, 2층 이상의 몸돌은 훨씬 작아지는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2000년대 사진에는 없음. 보고서 내용 중 1980년대까지는 있었다고 함.) 이 석탑은 특히 각 부분의 풍부한 조각들이 눈에 띄는데, 보존상태가 좋고 조각된 상들도 뚜렷하다. 탑신에 비해 밑의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는 경향이 있으나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 중흥산성 삼층석탑, 『전라남도의 석탑 III』, 2006, 문화재청, 18~55쪽. → 중앙의 탱주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각종의 존상을 새겼는데 정면 남쪽에는 인왕상(높이 79cm)2구, 측면인 동.서에는 시천왕입상 각2구. 후면인 북쪽에는 찻잔을 받쳐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공양상 2구를 양각으로 조각하였다. / 상륜부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반이 남아있다고 기록되고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는 부재가 하나도 없다. 중흥산성삼층석탑은 기단부가 넓고 높은 반면에 탑신부는 너무 낮은감이 있다.(기단부 높이 181㎝, 탑신부높이 209㎝) 예를들면 하대중석폭이 234㎝인데 비해 탑신부 높이는 209㎝ 밖에되지않으니탑신부가마치기단부위에얹혀져있는 것처럼 보여 탑신부가 약간 왜소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상·하층기단부의우주 및 탱주의 건실한 모습, 각 부재에서 보여준 균제된 기법은 신라하대 석탑의 조형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층기단에 조각된 인왕상과 사천왕상 및 공양상, 그리고 1층 탑신에 새겨진 사방불의 조각이 신라하대인 9세기경의 기법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미 반출된 석등(국보 제103호)과 거의 같은 시기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983 → 높이 3.8m.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의 석탑이다. 석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직사각형의 배례석(拜禮石)이 자리하고 있는데, 안상의 조각 수법이 특이하다. / 안정감을 주는 이 석탑은 좋은 질의 화강암을 재료로 삼아 조성하였기에 여러 조각이 여전히 명확하게 확인되는 등 보존 상태가 좋다. 건립 시기는 대체로 신라 하대로 추정된다.
- “탑을 가득 채운 조각상, 중흥산성 삼층석탑, 돌에 새긴 염원”, 한국의 석조문화,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5355 → 석탑과 함께 경내에 있었던 국보 제103호 석등은 1930년대 초 일본으로 반출된 후 떠돌다가 1937년 11월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그 후 덕수궁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 8월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전하여 관리하고 있다. /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2층기단의 3층석탑으로 신라 전형양식의 일반형 석탑이다. 전체적인 형식은 신라 석탑과 같지만 하대 갑석은 미세한 경사가 보이며, 우동이 뚜렷하다. 중앙에는 각형과 호형의 2단 받침을 조출하여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특이하게 6매의 석재로 결구하였다. 중앙의 탱주를 경계로 각종 조각을 하였다. 남면에는 인왕상, 측면인 동서 방향에는 사천왕입상 각 2구, 북쪽 면에는 찻잔을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공양상 2구를 조각했다. / 초층 탑신부에는 3면에 연화좌(蓮華座) 위에 결가부좌 한 여래상을 1구씩 조각했는데, 북면에는 입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면은 아미타의 수인에 왼손에 역함을 들고 있어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이며, 남면은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합장을 취하고 있어 다보여래로 보이지만, 대일여래의 5여래 중 제3위에 해당하는 남방의 보생여래(寶生如來)로도 볼 수 있다. 서쪽은 소발 머리에 육계가 큰 여래좌상인데 오른손을 높이 들어 검지와 엄지를 잡고 있고, 왼손은 좌측 무릎 위에 올리고 다시 검지와 엄지를 잡고 있어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다. 북쪽의 입상은 우견편단 법의를 착용하고 수인은 선정인을 결하고 있다. 모든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대원을 성취해 결코 헛되지 않게 공덕을 쌓았다고 하는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로 보인다. / 기단부의 우주와 탱주의 모습과 석재 결구수법 등을 고려했을 때 신라 하대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1층 탑신에 새겨진 사방불 장엄은 9세기경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조성 시기는 9세기 말로 추정된다. 그리고 석탑에 호법 신중을 표현할 때는 십이지신상, 팔부신중, 사천왕 등 위계에 따르는데 위계 없이 여러 신중과 공양상을 함께 배치한 것은 특별한 경우로 주목된다.
- 중흥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3975 → 중흥사(中興寺)는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운암사(雲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이다. 후대에 중흥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불에 타 폐사되었던 절터에 비구니들이 작은 암자를 건립하여 명맥을 이어왔으며, 1943년에 다시 폐허가 되었던 가람을 지역 독지가인 하태호(河泰鎬)의 후원으로 1963년 중창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