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옥곡 장동리 쌍효정려비
| 광양 옥곡 장동리 쌍효정려비 Commemorative Stele in Jandong-ri of Okgok-myeon, Gwang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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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 여행 쌍효정려비가 있는 예절의 고장 옥곡면 장동마을 #광양 #광양여행 #광양장동마을 #쌍효정려비 #예절의고장 #장동마을”, 광양시 공식 블로그, 2022.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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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광양 옥곡 장동리 쌍효정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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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Commemorative Stele in Jandong-ri of Okgok-myeon, Gwangyang |
| 한자 | 光陽 玉谷 莊洞里 雙孝旌閭碑 |
| 지정(등록) 종목 |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4호 |
해설문
국문
정려비는 충신, 효자, 열녀 등 덕행이 뛰어난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광양 옥곡 장동리 쌍효정려비는 병든 아버지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신 류계양(柳季養)과 그의 아내 해주 오씨(海州 吳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고종 29년(1892)에 조정에서 내린 교지에 따라 세워졌다. 1928년에 윤영구가 비문을 짓고, 김상희가 글씨를 새겼으며, 1929년 4월 16일에 류계양의 손자인 류채규가 비를 세웠다.
류씨 부부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래 누워 계실 때 지극한 정성으로 약과 음식을 마련하고, 겨울밤이면 여러 번 일어나 불을 지피며 보살폈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류계양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드리고(斷指注血, 단지주혈), 그의 아내는 허벅지 살을 베어 봉양하였다.
조정에서 그들의 효행을 기려 정려를 내렸고, 류계양에게는 동몽교관(童蒙敎官), 해주 오씨에게는 숙부인(淑夫人)을 증직*하였다.
비석의 앞면에는 ‘증 효자 조봉대부 동몽교관 전주 류공 계양·효부 숙부인 해주 오씨지려’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이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 증직: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줌.
영문
Commemorative Stele in Jandong-ri of Okgok-myeon, Gwangyang
This stele was erected in 1929 to commemorate the filial devotion of Ryu Gye-yang and his wife Lady O.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stalled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Ryu Gye-yang and Lady O took care of Ryu’s bedridden father with utmost attention over a long period of time, preparing him meals and medicine, and getting up several times a night to keep the fire burning on cold winter nights. When his father’s condition became critical, Ryu cut his own finger and fed him blood, while his wife cut flesh off her thighs to provide him with sustenance. As the word of their filial devotion spread around, the government issued a plaque to commemorate their virtues in 1892. In 1928, Ryu Gye-yang’s grandson Ryu Chae-gyu erected this stele, which features inscriptions composed by Yun Yeong-gu and calligraphed by Kim Sang-hui.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of the stele reads, “Commemoration of the Filial Son Ryu Gye-yang and His Wife the Filial Daughter-in-Law Lady O.” The inscription on the back records their virtuous deeds.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류계양과 그의 아내 해주오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29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이 부부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래 누워 계실 때 지극한 정성으로 약과 음식을 마련하고, 겨울밤이면 여러 번 일어나 불을 지피며 보살폈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류계양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드리고 오씨는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봉양하였다. 두 사람의 효행이 알려지자 1892년 조정에서는 정려를 내렸다. 이후 1928년 류계양의 손자인 류채규가 비석을 세웠으며, 윤영구가 비문을 짓고 김상희가 글씨를 썼다.
비석의 앞면에는 “효자 류계양과 효부 해주오씨를 기리는 정려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이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