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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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
Stele of Choe San-du, Gwangyang
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
영문명칭 Stele of Choe San-du, Gwangyang
한자 光陽 新齋 崔山斗 先生 遺墟碑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신재로 110 (광양읍, 봉양사)
지정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225호
지정일 2005년 1월 27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식/2962
웹사이트 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유허비는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에 그들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호남을 대표하는 학자인 최산두(崔山斗, 1483~1536)를 기리기 위해 영조 51년(1775)에 건립되었다. 유허비가 위치한 봉양사(鳳陽祠)는 광양현감을 지낸 박세후(朴世煦, 1494~1550)와 최산두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조 11년(1578)에 세워졌다.

광양 출신인 최산두는 중종 8년(1513)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덕행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쳐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나,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동복(오늘날의 화순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많은 학자들과 교유(交遊)하였으며, 김인후(金麟厚, 1510~1560)와 유희춘(柳希春, 1513~1577) 등 호남의 이름난 학자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비석은 받침돌과 몸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문은 당시 순천부사였던 김약행(金若行, 1718~?)이 지었다. 비문에는 최산두의 행적과 봉양사 연혁, 당대 신진사류들과의 교유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 사림의 형성과 역사적 성격, 지역문화의 특성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문

Stele of Choe San-du, Gwangyang

This stele was erected in 1775 to honor Choe San-du (1483-153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a renowned scholar of the Jeolla-do region. The stele is located within the premises of Bongyangsa Shrine, which was established in 1578 for the veneration of Choe San-du and Bak Se-hu (1494-1550), the magistrate of Gwangyang.

Born in Gwangyang, Choe San-du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13 and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He made a name for himself with his virtues and writing, and he also trained many disciples. However, he was implicated in the Literati Purge of 1519 and sent to exile in Dongbok (today’s Hwasun). Even in exile, he had close relationships with many scholars and took as his disciples Kim In-hu (1510-1560) and Yu Hui-chun (1513-1577), who later became renowned scholars of the Jeolla-do region.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and a body stone with an inscription.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Kim Yak-haeng (1718-?), the local magistrate of Suncheon. The inscription records Choe San-du’s achievements, the history of Bongyangsa Shrine, and his close relationships with his fellow Confucian scholars. Therefore, the stele serves as an important resource for understanding the establishment and historical nature of Confucianism, as well as the characteristics of local culture, during th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인 최산두(1483-1536)를 기리기 위해 1775년에 세웠다. 유허비가 위치한 봉양사(鳳陽祠)는 광양현감을 지낸 박세후(1494-1550)와 최산두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578년에 세워졌다.

광양 출신인 최산두는 1513년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덕행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쳐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나, 1519년 사화에 연루되어 동복(오늘날의 화순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많은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김인후(1510-1560)와 유희춘(1513-1577) 등 전라도 지역의 이름난 학자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비석은 받침돌과 몸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당시 순천부사였던 김약행(1718-?)이 지었다. 비문에는 최산두의 행적, 봉양사 연혁, 최산두가 당대 신진사류들과 교유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역사적 성격과 지역문화의 특성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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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_신재_최산두_선생_유허비 Object 광양_신재_최산두_선생_유허비
광양_봉양사 Place 광양_봉양사 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는 광양 봉양사 입구에 있다.
최산두 Actor 최산두(崔山斗,1482~1536)
김약행 Actor 김약행(金若行,1718~1788) 광양 신재 최산두 선생 유허비의 비문은 김약행이 지었다.
기묘명현 Actor 기묘명현(己卯名賢) 최산두는 기묘명현이자 호남의 대학자이다.
J36-0225-0000 Heritage (전라남도_기념물_제225호)광양_신재_최산두_선생 유허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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