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 박제순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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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박제순 선정비
Stele of Bak Je-sun
대표명칭 관찰사 박제순 선정비
영문명칭 Stele of Bak Je-sun
한자 觀察使 朴齊純 善政碑



해설문

국문

관찰사 박제순 선정비는 박제순(1858~1916, 본관 반남)이 충청도 관찰사(1894. 7.~1895. 10.)로 있을 당시 일본군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박제순은 외부대신으로 있던 1905년 11월에 을사늑약에 앞장서 ‘을사오적’으로, 내부대신으로 있던 1910년 8월에 합병조약에 동의하여 ‘경술국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일제로부터 귀족(자작)의 직위를 받고, 중추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영문

Stele of Bak Je-sun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achievements of Bak Je-sun (1858-1916), a civil official and pro-Japanese collaborator, for having worked alongside Japanese troops to suppress a peasant uprising in Gongju during his time as governor of Chungcheong-do Province from 1894 to 1895.

Later, while serving as minister of Foreign Affairs, Bak and four other Koreans, known collectively as the Five Eulsa Traitors, signed the Japan-Korean Protectorate Treaty of 1905 against the wishes of King Gojong (r. 1864-1907), by which Japan forcibly deprived Korea of its diplomatic rights. He also signed the Japan-Korea Treaty of 1910, by which Japan formally annexed Korea. Bak was recognized for his contributions by Imperial Japan, receiving the peerage title of Viscount and later serving on the Central Advisory Committee of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2009, he was listed among 1,006 Koreans who were found by the Presidential Committee for the Inspection of Collaborations for Japanese Imperialism to have collabor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박제순(1858-1916)이 1894-1895년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는 동안, 공주에서 일본군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 사실을 기록하여 세운 것이다.

이후 박제순은 1905년 외부대신으로 있을 때, 일본이 강제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 앞장섰고, 이때 함께 한 다른 4명의 대신들과 함께 을사오적으로 알려졌다. 1910년에는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는 조약에도 동의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 받아 일제로부터 자작의 직위를 받았고, 중추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박제순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에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