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지관
관산지관 Guesthouse of the Mungyeong Local Govern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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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관산지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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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uesthouse of the Mungyeong Local Government |
한자 | 冠山之館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리 35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192호 |
지정(등록)일 | 1987년 12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관산지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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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현 단위의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객관이라고도 한다. 주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전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였다.
관산지관은 조선시대에 건축한 문경관아의 객사 건물이다. 원래 중앙부의 주관(主館)과 부속관인 좌익사(왼쪽 날개 건물)와 우익사(오른쪽 날개 건물)가 있었으나 지금은 주관과 좌익사만 남아 있다. 우익사의 철거 연대와 그 연유에 대한 기록은 없다.
주관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고, 좌익사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주관의 지붕을 좌익사의 지붕보다 높게 하고 용마루의 양 끝에 장식용 기와를 얹은 우리나라 객사의 전형적인 건물로 조선시대 관아건물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 전패 : 임금을 상징하는 ‘殿’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세운 나무패
- 망궐례(望闕禮) :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각 지방의 관원이 궐패(궐패)에 절하던 의식
영문
Guesthouse of the Mungyeong Local Government
Guesthouses, called gaeksa in Korean, were built nearby local government offices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guesthouse includes a shrine in the center to hold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and two rooms to either side which were used as temporary lodging facilities for officials visiting from other regions. The wooden tablet enshrined in each local guesthouse exhibited the king’s sovereignty across the country. To acknowledge this sovereignty, the local magistrate and other officials regularly performed a ceremony in which they bowed deeply toward the royal capital.
It is uncertain, when this guesthouse was first constructed, but it was rebuilt in 1648 and 1735. Originally, this building had a typical guesthouse layout with the shrine in the center and a room to either side, but the room to the right was demolished at some point. The shrine section in the center of the building has a taller roof than the adjacent room, to signify its dignity. The ends of the main roof ridge are adorned with dragon head-shaped decorations, which is a typical feature of a guesthouse.
영문 해설 내용
객사는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다. 객사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당이 있고 좌우 양쪽에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이 있다. 객사에 모셔진 전패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이 건물을 처음 지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고, 1648년과 1735년에 고쳐지었다. 원래 중앙의 주관(主館)과 좌우의 날개 건물이 있었으나, 우익사는 철거되었다. 주관의 지붕을 날개 건물의 지붕보다 높게 하고, 용마루의 양 끝에는 장식용 기와를 얹은 것은 객사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참고
- “일제에 유린됐던 조선 왕권의 초석”, 경북일보, 2010.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