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영규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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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비
Stele of Buddhist Monk Yeonggyu
대표명칭 영규대사비
영문명칭 Stele of Buddhist Monk Yeonggyu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290
시대 숙종 19년(1693)



해설문

국문

이 비는 1592년 임진왜란 중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의로움을 기리기 위해 숙종 19년(1693) 5월에 세워졌다. 영규대사는 공주의 밀양 박씨 집안 출신으로 ‘영규(靈圭)’는 법명(法名)이고, ‘기허(騎虛)’는 법호(法號)이다.

그는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가 되어 계룡산 청련암(靑蓮庵)에 머물렀다. 이때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승장(僧將)으로 나서라는 공주 목사의 권유를 거부하였다. 이후 3일간 통곡하다가 승병을 모아 “우리는 조정의 명령으로 모인 것이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의 군대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 후 승병이 800여 명으로 늘었다.

영규대사는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성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 연곤평 전투에 참전했다가 끝내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이들이 전국적으로 사당을 짓거나 비를 세웠으며, 나라에서도 포상을 내리며 호국불교의 위상이 높아졌다. 영규대사비 앞면에는 ‘義兵 僧將靈圭之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시기와 참여 인물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영문

Stele of Buddhist Monk Yeonggyu

This stele was erected in 1693 to honor the patriotism and righteousness of the Buddhist monk Yeonggyu (?-1592), who led his fellow monk soldier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1592-1598). The front of the stele is inscribed with the title “Righteous Monk General Yeonggyu,” while the back records details about when and by whom it was created.

Yeonggyu was born to the Miryang Park clan in Gongju and later became a disciple of the eminent monk Hyujeong (1520-1604) after being ordained at Gapsa Temple on Gyeryongsan Mountain. When the war broke out, he reportedly wept for three days before rallying an army in Chungcheong-do Province, declaring, “We do not gather by royal command. Let no one join us who fears death.” He eventually gathered a force of over 800 monks.

Yeonggyu fought alongside the civilian army leader Jo Heon (1544-1592) in the successful defense of Cheongjuseong Fortress. However, he was later killed in the Battle of Yeongonpyeong in Geumsan while attempting to stop Japanese forces from advancing toward Jeolla-do Province. Moved by his sacrifice, people across the country erected shrines and monuments in his honor, while the government posthumously bestowed him with an official recognition and rewards.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인 영규대사(?-1592)의 의로움을 기리기 위해 1693년에 세워졌다. 앞면에는 “의병승장 영규대사”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시기와 참여 인물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영규대사는 공주의 밀양박씨 집안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3일 동안 통곡한 뒤 충청도에서 승병을 모았다. “우리는 조정의 명령으로 모인 것이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의 군대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고, 그 후 승병이 800여 명으로 늘었다.

이후 영규대사는 의병장 조헌(1544-1592)과 함께 청주성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 연곤평 전투에 참전했다가 끝내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이들이 전국적으로 사당을 짓거나 비를 세웠으며, 나라에서도 포상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