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류씨 정려각 및 비
고흥류씨정려각및비 Commemorative Pavilion and Stele of Lady R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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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흥류씨정려각및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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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ommemorative Pavilion and Stele of Lady Ryu |
한자 | 高興柳氏旌閭閣및碑 |
주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498-1 |
지정(등록) 종목 |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
지정(등록)일 | 1996년 3월 2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1기 |
웹사이트 | 고흥류씨정려각및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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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고흥 류씨 정려각은 조선 초기 문신 송유(宋愉)의 어머니인 고흥 류씨(高興柳氏)의 명정(命旌) 현판을 걸어 놓은 건물이다. 비는 류씨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고흥 류씨는 고려 말인 1371년에 태어나 은진 송씨 송극기(宋克己)에게 출가했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친정 부모는 재가를 시키려고 했으나 류씨는 네 살 난 어린 아들 송유를 데리고 개경에서 시가인 회덕으로 내려와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면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고 한다. 그녀의 행적을 가상히 여긴 왕이 1653년 정려를 내렸다.
정려각은 앞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규모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정려각 앞에는 1665년 명정 현판과 같은 내용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정려비의 후면에 류씨 부인의 행적과 정려를 받게 된 내력이 있는데, 송준길(宋浚吉)이 글을 짓고, 송시열(宋時烈)이 글씨를 썼다.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and Stele of Lady Ryu
This plaque and stele commemorate Lady Ryu (1371-1452), a virtuous wife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Lady Ryu was the daughter of Ryu Jun (1321-1406), a military official of the late Goryeo (918-1392) and early Joseon periods. She married into the Eunjin Song clan but became a widow at the age of 22. It is said that close family members tried to remarry her, but she walked from her natal home in Gaeseong (in present-day North Korea) to her husband's home in Hoedeok (today's Daejeon), carrying her 4-year-old son, Song Yu (1389-1446) on her back. Lady Ryu served her in-laws with great care and devoted herself to raising her son benevolently, resulting in Song Yu’s descendants becoming esteemed scholar-politicians and the Eunjin Song clan taking its place as a prestigious family. A commemorative plaque in recognition of Lady Ryu’s matrimonial devotion was bestowed in 1653.
The stele in front of the commemorative pavilion was erected in 1665. Its inscription tells about Lady Ryu’s life and the history of her receiving the commemorative plaque. The epitaph was composed by Song Si-yeol (1607-1689) and calligraphed by Song Jun-gil (1606-1672), prominent scholars who were members of the Eunjin Song clan.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열녀인 고흥류씨(1371-1452)의 정려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류씨는 고려말 조선초의 무신이었던 류준(1321-1406)의 딸이다. 은진송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으나, 22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친정 부모가 그녀를 재혼시키려 하였지만 류씨는 4살이었던 아들 송유(1389-1446)를 업고 친정인 개성(지금의 북한)에서 시댁인 회덕(지금의 대전 지역)까지 걸어서 내려왔다고 한다. 류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고, 송유의 후손들이 학자와 정치가로 이름을 날리며 은진송씨가 명문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에 류씨의 업적을 인정하여 1653년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각 앞에 있는 비석은 1665년에 세워졌다. 뒷면에 새겨진 비문에는 류씨의 행적과 정려를 받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비문은 송시열(1607-1689)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1606-1672)이 썼으며, 두 사람 모두 은진송씨 후손이자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이다.
참고자료
- 조선시대 송시열·송준길 등 유학 거목 배출한 명문가-은진송씨, 세계일보, 2014.4.8. http://www.segye.com/newsView/20140408004572?OutUrl=naver
- https://blog.naver.com/study-banseok/221778687996